문재인 정부가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를 부동산 투기의 하나로 지목하고 규제책을 쏟아냈지만 공염불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대책 발표 직후에만 일시적으로 줄었을 뿐 최근 4년간 갭투자는 꾸준히 늘어 섣부른 대책이 부작용만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서울시 자금조달계획서 현황'에 따르면 갭투자를 뜻하는 보증금 승계 후 임대 비율은 2017년 9월 14.3%에서 올해 7월 41.9%로 3배 가까이 상승했다.
서울에서 갭투자 비율은 문 정부 초기인 2018년 1월(33.1%)부터 높아졌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2017년 8월 '8·2 대책'을 내놓은 후 증가한 것이다. 다주택자 규제 및 서울 일부 지역에 대한 투기지역 지정, 재건축·재개발 규제, 분양가상한제 부활 등을 포함한 8·2 대책에도 갭투자 비중은 2018년 9월까지 30%를 웃돌았다.
정부는 다시 한번 '규제 카드'를 꺼냈다. 2018년 9월 발표한 '9·13 대책'이다. 종합부동산세 중과가 핵심인데, 서울 갭투자 비율은 그해 10월 19.9%로 급감했고 2019년 2월에는 13.7%까지 쪼그라들었다.
이번에도 효과는 얼마 가지 않아 2019년 11월 갭투자 비율이 다시 32.4%로 높아졌다. 이에 정부는 고가주택의 주택담보대출 금지 및 비율 축소 등이 골자인 '12·16 대책'을 내놓았다. 대책 발표 4개월 만인 지난해 4월 갭투자 비율은 17.2%까지 줄었다.
계속된 집값 상승에 무주택자들의 불안 심리는 진정되지 않아 지난해 6월 갭투자 비율은 31.6%로 다시 늘었고, 정부는 재건축 단지 조합원의 실거주 의무를 담은 '6·17 대책'을 꺼냈다.
갭투자 비율은 3개월 뒤인 지난해 9월 14.1%까지 줄었다 연말부터 반등해 결국 올해 1월 처음 40%를 돌파했다. 정부는 다시 '2·4 대책'을 발표했으나 '갭투자 증가→정부 규제→일시적 하락→다시 증가'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청약시장이 과열돼 30대가 서울 아파트를 분양받기 어렵고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10억 원을 넘어버린 상황에서 대출까지 막아 결국 갈 곳은 갭투자밖에 없다"며 "집값이 계속 올라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불안심리가 갭투자를 부추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분별한 전세자금대출도 갭투자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전세자금대출은 세입자의 주거안정을 위한 제도지만, 소유한 주택을 전세로 돌리고 실거주를 위한 전세를 구하는 자금으로 이용돼왔다. 5대 시중은행의 8월 기준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119조9,670억 원으로, 지난해 말(105조2,127억 원)보다 약 1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 증가율(4.1%)의 3배가 넘는다.
최근 금융당국의 대출규제 조치도 전세자금대출을 틀어막기 위한 정부의 마지막 카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출을 막은 '강남4구'의 갭투자 비율은 2017년 9월 21.4%에서 등락을 거듭하다 올해 7월 44.9%까지 두 배 넘게 뛰었다. 또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율이 같은 기간 65.9%에서 60.6%로 줄어든 것과 달리, 연립·다세대주택의 경우 오히려 65.1%에서 70.6%로 증가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다세대주택으로 실거주 수요자들이 몰리면서 갭투자도 빌라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김상훈 의원은 "문 정부가 갭투자를 잡겠다고 온갖 정책을 쏟아내고 국민을 불편하게 했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고 최근엔 더 증가했다"며 "수요와 투기를 구분하지 않고 현장을 외면하는 어설픈 정책실험에 국민의 고통만 배가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