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아프간 대응은 ‘적과의 동침’… 백신은 ‘신냉전’

입력
2021.09.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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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중앙아시아 내 러시아군 기지' 활용 방안 논의
美의회 "현행법상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안 돼" 반대 
미·러, 30일 전략적 안정성 2차 회담서도 다뤄질 듯
美 "러시아산 백신 접종자 입국 제한"... 러, 즉각 반발

미국과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의 테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군의 중앙아시아 러시아군 기지 사용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림반도 강제병합, 미국 대선 개입 시도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양국이 아프간 문제에 있어선 두 손을 맞잡고 ‘공동 이익’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27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마크 밀리 미군 합참의장은 22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과의 회담 도중 중앙아시아 러시아군 기지를 미군이 사용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런 제안을 한 데 대해 미국이 러시아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이라는 게 미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확답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지난달 말 아프간 철군 완료 이후, 고도의 감시망을 통해 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 등 외부의 군 기지에서 드론이나 전투기를 출격시키는 ‘초지평선(over the horizon)’ 작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거리가 먼 탓에 아프간 상공에서 작전을 수행할 시간이 다소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어, 중앙아시아 내 미군 주둔 방안을 모색해 왔다.

다만 미·러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데다, 미 의회에서의 논란도 거세 양국의 군사 협력이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미 의회는 2017년 국방수권법(NDAA)에 따라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원천 금지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우크라이나에 주둔시킨 군대를 철수하고 평화협정을 준수하지 않는 한,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에 미 연방정부 예산을 쓸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공화당 일부 의원들은 “러시아는 테러 위협 정보 공유보다, 미국과 동맹들의 첩보를 수집하는 데 더 신경을 쓴다”며 “러시아의 제안을 경계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두 나라 간 대화는 이어질 듯하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도 3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러시아 외무장관과 만나 핵군축 등 양국의 군비통제 및 위험 감소 조치를 위한 '전략적 안정성 2차 회담'에 나선다. 이 자리에서도 미군의 러시아군 기지 활용 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

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서는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11월부터 세계보건기구(WHO) 승인을 받지 못한 백신을 접종한 사람의 입국을 금지할 방침인데, 여기엔 러시아가 개발한 스푸트니크V 백신도 포함돼 있다. 연간 미국을 찾는 러시아 방문객은 수십만 명이다. 게다가 스푸트니크V 백신의 해외 수출 물량만 약 4억4,800만 회분이어서, 러시아 국민뿐 아니라 해당 백신을 맞은 다른 나라 출신 여행객도 입국이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백신 생산·공급업체인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는 성명을 내고 “스푸트니크V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40억 명이 거주하는 70개국에서 승인을 받았다”며 “코로나19에 대항한 세계의 투쟁을 정치화하고, 단기적 이득을 위해 효과적인 백신을 차별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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