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5,000원 vs 3,900원' 가성비냐 고급화냐…버거의 경제학

입력
2021.09.2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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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메뉴 버거시장 5년 만에 약 30% 성장
‘6,900원’ 노브랜드 최고가·쉐이크쉑엔 최저가
“어차피 집 못 사는데” 만족에 지갑 연 소비자

버거는 불황기에 잘 팔리는 메뉴인데, 버거의 세계에서도 양극화가 뚜렷해졌다.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중 고급화 전략을 펴는 쉐이크쉑과 가성비족(族)을 공략한 노브랜드버거(NBB)가 약진하면서다. 장기화한 코로나19 사태로 팍팍해진 주머니 사정에 고정 지출을 줄이는 대신 나를 위한 소비에는 후하게 지갑을 여는 '야누스 소비'도 버거의 양극화와 맞물려 있다. 야누스 소비는 실속형과 고가 제품을 동시에 소비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28일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버거 시장 규모는 2015년 2조3,038억 원에서 지난해 2조9,636억 원으로 5년 만에 28.6% 성장했다. SPC의 쉐이크쉑과 신세계푸드의 NBB가 시장에 뛰어든 효과로 풀이된다.

2016년 7월 22일 국내에 상륙한 쉐이크쉑은 높은 인기를 이어가며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에 18호 매장인 홍대점을 열었다. 2019년 8월 등장한 NBB는 코로나19 불황을 타고 업계 최단기간인 1년 8개월 만에 100호점을 돌파한 데 이어 이달 16일 부산 하단아트몰링점으로 150호점을 달성했다.

두 버거의 타깃 고객은 극과 극이다. '파인 캐주얼 브랜드'를 지향하는 쉐이크쉑은 가장 저렴한 버거가 6,000원대이고, 스모크쉑 더블은 버거 단품(패티 2장 기준)만 1만2,900원이다. 사이드 메뉴 고추장 프라이(5,400원)와 바닐라 쿠키앤 크림 쉐이크(6,800원)를 더해 세트로 구성하면 2만5,100원이다. 디저트도 고급화해 간판 후식인 초콜릿 커스터드 쉑 어택은 D사이즈가 8,900원이다.

이와 달리 NBB의 그릴드 불고기는 단돈 1,900원, 감자튀김과 탄산음료를 추가한 세트는 3,900원이다. 국내 프랜차이즈 버거 중 프로모션 없이 판매하는 최저가다. 패티 2장에 달걀 프라이가 들어간 최고가 메뉴 미트 마니아는 단품 5,300원에 세트가 6,900원. 세트 가격이 쉐이크쉑의 최저가 단품과 같다.


“어차피 집 못 사는데…” MZ세대, 만족에 지갑 연다


극단화된 버거 시장이 코로나 불황으로 내 집 마련이나 결혼 앞에 좌절한 MZ세대의 심리를 대변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 같으면 내 집 마련을 위해 썼을 목돈이지만, 집을 사거나 가족을 꾸리기 어려워진 2040세대가 강력한 만족감을 얻는 데 지출한다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 매장 앞에 새벽부터 '오픈런' 줄이 늘어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가방만 봐도 아주 저렴한 에코백과 고가의 명품을 동시에 구매하는 이중적 성향을 보인다"며 "음식도 한 사람이 아주 저렴하거나 매우 비싼 메뉴를 선택하는 야누스 소비 패턴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양극화한 버거 시장에서 패스트푸드 전통 강자 한국맥도날드와 롯데리아도 대항 메뉴를 내놓으며 전력투구 중이다. 맥도날드는 점심시간에 세트 메뉴를 할인하는 맥런치와 인기 스낵을 종일 할인하는 해피 스낵을 통해 가성비족을 공략하고 있다. 지역 특산물과 결합한 한정 메뉴도 반응이 좋다. 지난달 출시한 창녕 갈릭 버거는 100% 국내산 창녕 햇마늘을 넣어 3주 만에 110만 개가 팔렸고, 전 매장에서 일시 품절 사태를 빚기도 했다.

롯데리아도 대표 제품을 업그레이드하고 시간 한정 프로모션을 통해 가성비족을 공략하고 있다. 올초부터 인기 메뉴에 패티를 2장씩 넣고 가격은 15~30% 낮춘 프로모션이 대표적이다. 패티가 2장인 사각새우더블버거와 핫크리스피버거 세트는 올 상반기 한 달에 100만 개씩 팔렸다.

패티 중량을 각각 25%, 28% 늘리고 양상추를 1.5배 더 넣은 불고기버거·한우불고기버거도 소비자의 호응을 얻고 있다. 롯데리아 관계자는 "가격은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하고 중량을 늘린 버거 판매량은 이전보다 20% 증가했다"며 "품질과 가격, 맛 3박자를 맞춰 베스트셀러 제품의 변화를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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