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 금융위원장이 가계부채 총량 관리를 내년 이후까지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과도한 가계 빚과 자산 가격이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올해 5, 6%대로 목표를 잡고 있는 가계부채 증가율을 4%대로 낮춘 뒤에도 리스크 관리를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경제·금융시장 전문가들도 가계부채 위험성을 경고하며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27일 고 위원장은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경제·금융시장 전문가들과의 간담회에 앞서 "가계부채 총량 관리의 시계를 내년 이후까지 확장하고, 대책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강도 높은 조치들을 지속적·단계적으로 시행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을 넘어 내후년까지도 지금과 같은 고강도 '대출 조이기'가 계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과도한 '빚투' 행위를 "밀물이 들어오는 갯벌로 들어가는 상황"에 비유한 고 위원장은 "이 문제가 오랜 기간 누적·확대된 만큼, 관성을 되돌리는 과정이 불편할지언정 일관된 의지를 가지고 선제적으로 강력히 추진할 것"이라며 "10월 중 발표할 가계부채 추가대책 핵심도 상환능력 평가의 실효성 제고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외 경제상황에 대한 진단과 대응 방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개최된 이날 간담회에는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오석태 SG증권 이코노미스트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센터장 △이종우 경제평론가 △김영일 나이스(NICE)평가정보 리서치센터장 △김동환 대안금융경제연구소장 △신동준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참석했다.
이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강조한 부분도 가계부채의 심각성이었다. 신용상 센터장은 "올해 1분기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107.6%로 2008년에 비해 무려 33.2%포인트나 올랐다"며 "가계부채 규모와 증가 속도가 세계 최상위권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종우 평론가도 "자영업자 대출이 831조 원으로 1년 만에 18.8%나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가계부채 양과 질이 모두 악화하고 있다"며 "자산 가격 상승이 멈추고 대출 부실이 현실화할 경우 장기간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는 가계부채 총량과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 평론가는 "앞으로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관리 가능하도록 선제적으로 대출규제 정책 강도를 높여야 한다"며 "대출에 대한 비용을 높이거나 대출 접근성을 엄격히 통제하는 방안 등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기 위해 전세대출을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영일 센터장은 "올해 8월 말 전세대출금은 전년 동기 대비 22.3% 증가해 가계대출 증가세를 견인했다"며 "가계부채 연착륙 방안 마련을 위해 전세대출 증가 요인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1억 원 이상 전세대출 차주 비중이 2년 전에 비해 10.7%포인트나 오른 42.2%"라며 "임차인의 레버리지 확대 수단으로 전세대출이 활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주식 등 자산시장에 대해서는 우려와 낙관이 공존했다. 김영익 교수는 "글로벌 부채가 3년 만에 2배 이상 급증하고, 자산가격에도 거품이 낀 상태"라며 "내년에는 글로벌 경제가 다시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동환 소장은 "금리 수준이 아직 낮고, 부동산 투자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반기 증시 전망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다만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동준 센터장은 "외국인 자금이탈에도 기업들의 설비투자, 국내투자 저변 확대 등으로 시장은 긍정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