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K2 흑표 전차’ 납품 지연으로 방위사업청에 1,000억 원이 넘는 배상액을 물을 처지에 놓였던 방산업체 현대로템의 금전적 부담이 70억 원 수준으로 대폭 깎일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지정한 협력업체의 과실로 납품이 늦어져도 책임을 납품업체가 온전히 떠안아야 했지만, 불합리한 제도가 바뀐 덕분에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됐다.
26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방사청은 29일 정책심의회를 열고 ‘군수품 조달관리 규정’을 개정한다. 납품업체(완성ㆍ조립업체)가 협력업체(하도급)를 선택할 수 없는 경우 협력업체의 책임분에 해당하는 지체상금(납기 지연 배상금)만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현행 규정은 무기체계 계약금 전액을 기준 삼아 배상금을 산정하는 탓에 금액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렇게 되면 납품업체가 지체상금을 많이 부담할수록 적기에 부품을 납품한 다른 중소업체들에 돌아가는 몫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영세업체들의 줄도산 위험도 있다.
대표적 피해 사례가 현대로템의 K2 전차 사업이다. 군 당국은 2010~2023년 총 2조8,354억 원을 투자해 3차에 걸쳐 미래 전장 환경에 적합한 국산 K2 전차를 확보하기로 했다. 당국은 부품 조립 및 최종 완성 업체로 현대로템을, ‘전차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변속기 공급 업체로 S&T중공업을 선정했다. 문제는 3차 양산 과정에서 S&T중공업이 담당한 변속기가 군 당국이 요구한 내구도 성능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애초 2016년 말 약속한 납기일을 훌쩍 넘긴 것이다. 방사청이 2019년 이후로 기간을 연장해줬지만 ‘고장 없이 9,600㎞를 달려야 한다’는 조건을 맞추지 못했다. 결국 군 당국은 지난해 11월 국산이 아닌 독일산 변속기를 달기로 결정했다.
방사청은 늦어진 납기일(평균 560여 일)에 비례해 산정된 지체상금 1,038억 원을 계약당사자이자 납품업체인 현대로템에 부과했다. S&T중공업을 협력업체로 지정한 주체는 방사청인데도, 모든 금전적 손해는 현대로템이 감수한 셈이다. 과도한 지체상금은 현대로템과 S&T중공업 간 소송으로 번졌고, 지난해 국방위 국정감사에서도 잘못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질타가 거셌다.
방사청은 기획재정부와 협의, 법무 검토 등 제도 개선에 필요한 사전 절차는 마친 상태다. 규정이 바뀌면 현대로템의 지체상금 부담액은 1,038억 원에서 70억 원으로 968억 원 감면된다. 변속기 계약 금액만 적용해 배상금을 산정한 결과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방사청과 현대로템이 K2 전차 계약 당사자라 납품업체에 지체상금을 청구하지만, 구상권 개념처럼 업체가 추후에 S&T중공업 측에 70억 원을 받아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