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서울시의원, 지하철역 상인회에서 억대 금품 수수 혐의

입력
2021.09.24 15:00
"수의계약으로 상가 운영권 재입찰 받게 해주겠다"
전 의원 1억3500만 원 받고 현직에 3400만 원 전달
경찰, 뇌물·알선수재 수사… 상인회 대표 등도 입건
당사자 "개인적으로 쓴 돈 제외, 상인회에 돌려줬다"

경찰이 서울 지하철역 지하도상가 운영권을 재입찰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며 억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전·현직 서울시의원을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4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서울시의회 A 의원과 전직 의원 B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알선수재 등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금품을 제공한 지하도상가 상인회 대표 등도 입건했다.

B씨는 2019년 6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서울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2호선 강남역, 3호선 고속터미널역의 지하도상가 상인회 대표들로부터 3차례에 걸쳐 총 1억 3,5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서울시의회에서 지하도상가 운영 관련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A 의원은 이 중 3,400만 원을 B씨에게서 건네받은 혐의를 받는다.

B씨는 2019년 6월쯤 평소 친분이 있던 영등포역 상인회 대표 C씨에게 "현금을 마련해주면 현직 시의원 도움을 받아 내년 상가운영권 재입찰이 수의계약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힘써주겠다"며 금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6, 8, 9대 서울시의원에 당선돼 2002년부터 2018년까지 재임했다.

C씨는 강남역·고속터미널역 상인회 대표들과 돈을 모아 B씨에게 줬고, 그는 A 의원에게 일부를 전달했다. 이후 A 의원은 서울시 관할 부서 공무원과 상인회 대표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상임위에선 이들 3개 역 지하도상가를 언급하면서 재입찰 혜택을 줘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하기도 했다.

공유재산법 시행령에 따라 지하철역 지하도상가는 공공재산으로 분류되며 5년마다 경쟁입찰으로 상가 운영자를 모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지방자치단체가 일반 입찰에 부치기 곤란하다고 판단한 경우엔 조례 개정을 통해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붙어 있다.

상가 운영 위탁 기간 만료를 앞두고 C씨 등은 시의회 로비를 통해 수의계약으로 재입찰받을 가능성을 기대하며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난해 진행된 영등포역·강남역 재입찰은 불발됐고, 강남역 지하도상가 상인회 대표는 그해 5월 B씨와 C씨가 공모해 사기를 쳤다며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고소 건과 별도로 지난해 이 같은 정황을 포착한 후 내사, 관련자 압수수색을 통해 관련 문건을 확보하고 계좌 추적을 진행했다.

B씨는 "상가 운영 기간이 짧으면 투자 경비를 회수하기 어렵다는 상인들 고충을 알기 때문에, 상인회 상임고문에 채용돼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에 관심을 촉구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A 의원에게 준 돈은 뇌물이 아니라 인사차 준 것이고 나중에 돌려받았다"며 "나도 상인회에서 받은 돈을 돌려줬으며, 일부 개인적으로 쓴 돈은 갚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유지 기자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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