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찬스' 18억원으로 용산에 집 산 20대..."부의 대물림 가속"

입력
2021.09.23 16:43
'그밖의 차입금' 주택 구입 1년간 3배 증가
편법 증여한 대기업 임원·의사 등 적발
미성년 임대업자도 5년 새 58% 늘어나

#대학생 A씨는 지난해 8월 서울 용산구 주성동의 약 20억 원짜리 주택을 구입했다. 20억 원 중 90%에 이르는 17억9,000만 원은 어머니가 '빌려준' 돈이었다. 만약 A씨가 돈을 빌리지 않고 증여를 받았다면 5억1,992만 원의 증여세를 납부해야 했다.

#B씨는 지난해 6월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아파트를 31억7,000만 원에 샀다. 구입 자금 전부를 아버지에게 빌렸다. 해당 금액을 증여 받았다면 10억6,700만 원의 증여세를 내야 했다. A씨와 B씨가 부모에게 꼬박꼬박 이자를 지급하는지, 원금을 갚아나가고 있는지는 확인할 길은 없다.

세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한 '부의 대물림'이 가속화되고 있다.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부모에게 편법으로 돈을 빌려 집을 사거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지도 않은 미성년자가 임대소득을 올리는 사례가 최근 들어 급증했다.

23일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매입자금의 50% 이상을 '그 밖의 차입금'으로 조달한 건수는 3,880건으로, 2019년(1,256건)보다 3배 넘게 증가했다. 올해(1~8월)는 4,224건으로 더 늘어 8개월 만에 지난해 전체 건수를 추월했다.

그 밖의 차입금이란 주택구입 시 작성하는 자금조달계획서에서 자금 출처를 소명하는 항목 중 금융기관이 아닌 제3자에게 대출받은 경우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가족이나 지인에게 빌리는 경우가 많은데,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악용된다.

국세청은 그 밖의 차입금을 이용한 '편법 증여' 사례를 다수 적발해왔다. 2018년에는 한 대기업 임원이 동생에게 돈을 전달한 뒤 자신의 두 아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서울 서초구 아파트를 각각 구입하게 도왔다. 지난해 7월에는 한 의사가 아들에게 주택매입자금을 편법 증여한 뒤 병원에 '위장 취업'을 시켜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게 했다. 소병훈 의원은 "그 밖의 차입금을 이용한 편법 증여가 만연하면 세법의 근간이 무너진다"며 "적정 이자율에 따라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지 주기적으로 확인 및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대소득을 벌어들이는 미성년자의 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진성준 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임대소득을 신고한 미성년자는 2,842명으로, 5년 전인 2015년(1,795명)보다 58.3% 증가했다. 전세보증금은 예외적으로 2주택까지 비과세가 적용되는데, 이로 인해 변칙 상속·증여의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진성준 의원은 "부모찬스를 통한 부동산 불로소득자가 가파르게 증가해 출발선의 불공정이 심화되고 있다"며 "자녀 명의의 임대소득으로 세금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아 미성년자의 세금 탈루 여부를 적극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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