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시작된 러시아 연방하원(두마) 선거에서 ‘가짜 후보’가 등장하는 등 부정 선거 의혹이 제기됐다. ‘종신 집권’을 노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이 총선 승리를 위해 부정 행위가 난무하는 선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구에서 진보 야당인 야블로코당의 보리스 비슈네프스키 후보가 두 명의 가짜 후보와 경쟁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식 선거포스터와 투표 용지 등에는 비슈네프스키 후보와 이름이 같고 외모가 비슷한 후보 두 명이 등장했다.
재선에 도전하는 비슈네프스키는 “이들은 유권자를 혼란시키기 위해 이름뿐 아니라 외모까지 바꿨다”면서 “유권자들이 헷갈려 가짜 후보에 투표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그는 “정권이 미는 후보자들이 지지율이 너무 낮아서 정직한 방법으로는 이길 수 없으니 더러운 속임수를 쓰고 있다”며 “이는 정치적 사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주요 유력 야권 후보자들은 줄줄이 출마를 저지당했다. 항구 도시 무르만스크 지역에서 출마하려던 비올레타 그로디나 야당 후보는 최근 자격을 박탈당했다. 불법 시위 조작 혐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감금된 러시아 반정부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당국은 나발니가 운영해온 반부패재단을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해 관련 인사들의 공직선거 출마를 5년간 금지하는 선거법을 개정했다. 이 때문에 관련 야권 인사 수십 명이 후보 등록조차 하지 못했다. 앞서 당국은 건물 임대차 계약에서 대출금이 연체됐다는 이유로 야당 인사 드미트리 구드코프를 체포해 출마를 막았다. 나발니 측이 개발한 정권 교체에 가장 유리한 야당 후보를 알려주는 ‘스마트 투표 애플리케이션(앱)’도 폐쇄됐다.
푸틴 정권이 대대적인 선거 방해공작에 나선 이유는 반정부 시위, 경제위기 등으로 여당의 인기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는 최근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지지율이 30%에 그친다고 발표했다. 2006년 이후 가장 낮다.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주요 야권 인사들이 출마를 하지 못한데다 부정 행위까지 총동원해 통합러시아당이 이번 총선에서도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5년 임기인 러시아 하원 의석 수는 총 450석이다. 이중 통합러시아당이 개헌선인 300석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통합러시아당이 의석 수를 유지하면 2024년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 대통령의 재집권도 유리해진다. 2000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푸틴은 3번 이상 연임을 금지하는 당시 헌법에 막혀 총리직으로 물러난 4년 (2008~2012년)을 제외하곤 줄곧 대통령직을 맡았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헌법 개정에 이어 올해 4월 최대 2036년까지 집권 가능한 선거법을 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