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국·호주가 15일(현지시간) 발족한 새로운 3자 안보 협의체 ‘오커스(AUKUS)’가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유럽 내 오랜 앙숙인 영국과 프랑스는 희비가 갈렸다. 영국은 오커스 참여로 인도·태평양 지역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 반면, 프랑스는 호주와의 잠수함 건조 계약 파기로 수백억 달러 손해를 보게 됐다.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에도 균열이 생기는 조짐이다.
영국이 오커스의 한 축을 담당한 건, 미국의 핵심 동맹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국은 미국과 연합해 중국 견제에 나서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서서히 영향력을 키워 왔다. 7월에는 최신예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호’를 미중 긴장 지역인 남중국해에 파견했고, 앞서 6월에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도 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흔들리는 위상을 인도·태평양 진출로 다시 세워보려는 야심이 반영된 행보다. 이제는 오커스를 기반 삼아 아시아에 본격 개입할 명분까지 얻게 됐다.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연구대(SOAS) 유카 고바야시 교수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에서 아시아 전략 회귀를 볼 수 있듯이, 영국 역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야심찬 목표를 갖고 ‘글로벌 브리튼’이란 정체성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미국 고위 관리를 인용해 “영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훨씬 더 깊이 관여하려고 한다”며 “핵추진 잠수함 계획은 착수금인 셈”이라고 전했다.
영국 정부는 잠수함 기술 지원으로 수익까지 노리고 있다. 영국 해군 잠수함에 소형모듈형원자로를 공급하는 엔진제작업체 롤스로이스와 방위산업체 BAE 시스템스 등이 잠수함 프로젝트에 참여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실리와 명분을 두루 챙긴 영국을 보며 프랑스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2016년 프랑스 군함 제조업체 네이벌 그룹과 호주 정부가 맺은 ‘미래 잠수함 프로그램’ 계약이 오커스 출범과 동시에 폐기됐기 때문이다. 네이벌 그룹은 디젤 잠수함 12척을 호주에 공급할 예정이었다. 사업 규모는 660억 달러(약 77조 원)에 이른다. 엄청난 수익을 오커스에 빼앗겨 버린 프랑스는 눈뜨고 코 베인 처지가 됐다.
프랑스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장이브 르드리앙 외무장관과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장관은 공동성명을 통해 “잠수함 사업 폐기는 프랑스와 호주 간 협력 정신에 위배되는 결정”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아울러 미국을 향해 “유럽 파트너이자 동맹인 프랑스를 호주와의 파트너십에서 배제한 미국의 결정은 일관성 결여를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제라드 아로 전 주미 프랑스 대사는 더 나아가 “미국과 영국에게 등을 찔린 프랑스는 쓰라린 진실을 깨닫게 됐다”면서 “프랑스 잠수함은 모두 핵추진력을 갖추고 있어 기술을 공급하기도 쉬웠을 텐데, 호주가 왜 프랑스에 의지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짚었다.
블룸버그통신은 “네이벌 그룹은 가격 책정부터 호주 현지 생산에 관한 일정과 세부 협의까지 계약상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 왔다”며 “프랑스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 “50여 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였으나 이제는 계약 파기 수수료 협상을 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