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사망률로 국가들을 평가하는 이유…진실을 말하는 숫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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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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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총생산(GDP) 또는 가처분소득은 경제학자들이 세계 각국의 삶의 질을 설명하면서 애용하는 대표적 지표다. 1인당 GDP를 제시하면서 대략적으로 ‘이 나라 국민은 이만큼 먹고 산다’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믿을 만한 해석일까? 이 숫자들을 그렇게 읽어도 될까?

유럽연합과 미국의 다양한 국제기구에서 정책자문으로 일했던 바츨라프 스밀 캐나다 매니토바대학교 명예교수는 최근작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에서 삶의 질을 나타내는 도구로서 GDP와 가처분소득은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폭력이 늘어나서 경찰이 더 많이 필요하고, 안전대책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하고, 병원에 입원하는 부상자가 늘어나는 경우에도 GDP는 상승할 수 있다. 평균 가처분소득으로는 경제적 불평등이 심한 나라의 생활 수준을 가늠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스밀 교수는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한다. 사회단체부터 대학, 기업 그리고 정부에 이르기까지 온갖 데이터 생산자들이 쏟아내는 ‘수치’에는 세계의 진정한 상태가 담겨 있다. 부정확하게 만들어졌다거나 생산자의 의도나 편견이 반영됐다는 비판을 때때로 듣지만 그럼에도 인류가 생산하는 많은 자료 가운데 숫자만큼 객관적인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넘쳐나는 숫자들의 의미를 똑바로 이해하는 눈이 우리에게 필요할 뿐이다.

수치가 나타내는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숫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산출됐는지 알아야 한다. 그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예컨대 스밀 교수는 ‘삶의 질을 신속하고 확실하게 비교할 수 있고, 하나의 변수만 사용하는 기준’을 고르라면 유아 사망률을 선택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유아 사망률은 정상적으로 출생한 아기 1,000명 가운데 생후 1년 이내에 사망하는 유아의 수를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아기들이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해서 죽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유아 사망률이 낮아지려면 해당 국가의 의료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야 한다. 출생 전후 관리부터 신생아 관리, 산모와 유아의 적절한 영양 관리가 적절하게 이뤄져야 한다. 생활 환경이 위생적이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여기에 이용하기 편리한 사회기반시설과 정부와 개인의 적절한 지출도 필요하다. 단 하나의 변수에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생후 첫해의 생존을 결정하는 다양한 조건들이 담겨 있다. 스밀 교수가 유아 사망률을 첫 손가락에 꼽은 이유다.



이를테면 시에라리온의 유아 사망률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1명이었다. 소말리아에서는 69명, 나이지리아에서는 62명의 아이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반면 핀란드와 아일랜드, 슬로베니아에서는 2명에 불과하다. 아프리카 사하라 남쪽 국가들의 유아 사망률은 100년 전의 서유럽 수준과 비슷하다. 스밀 교수는 이들이 유럽의 부유한 국가들의 발전을 따라잡으려면 앞으로도 100년이 걸린다고 해석한다.

물론 수치 몇 개를 읽을 줄 안다고 현자가 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수치는 발표된 순간부터 과거의 이야기가 된다. 숫자로 포착할 수 없는 질적 차이도 있다. 대형마트 선반에 놓인 식빵과 고급 제과점의 진열대에 놓은 디저트의 탄수화물 함량이 같다고 해서 두 제품의 가치를 똑같이 평가할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스밀 교수는 저서에서 71가지 주제를 통해서 숫자를 읽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적훈련을 거듭하고 신경세포를 깨울수록 우리를 에워싼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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