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가 지난 7월 벌어진 '전서 개정증보판 회수·폐기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44년 만에 내놓은 경전 개정증보판에 오류가 많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원불교에서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수위단회) 구성원을 새롭게 선출하는 선거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후보자추천위원회가 전서 사태를 책임지고 사퇴한 전임 수위단원들을 후보자 명단에 올리면서 내부에서 선거가 불공정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13일 원불교개혁연대 등에 따르면 원불교 산하 정수위 단원 및 호법수위단원 후보추천위원회는 정수위단원을 선출하기 위한 3배수 후보자 명단(54명)을 최근 확정했다. 전임 정수위단원 18명 전원이 전서 사태를 계기로 총사퇴하면서 보궐선거가 29일 열리기 때문이다. 원불교는 지난 4월 10일 전서를 새롭게 발행해 전국 교당과 기관에 배포했으나 오·탈자가 많고 그림이 잘못 삽입되기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교인들 사이에서 비판 여론이 일었다. 교단은 4만 권에 이르는 전서를 전량 회수해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원불교개혁연대도 이 사건을 계기로 교인들이 구성한 단체다. 현재 회원은 69명이다.
문제는 후보자추천위원회가 추린 후보자들 가운데 전임 정수위 단원들이 포함되면서 불거졌다. 개혁연대는 지난 8일 발표한 성명에서 “전서 폐기 참사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정수위 단원들이 대부분 다시 재추천됐다. 원기 103년(2018년) 선출된 18명의 정수위 단원 중 나이 제한으로 제외된 3명 등을 빼고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거의 재추천됐고 이 중에는 전서 폐기 참사에 직접 책임이 있는 감수위원들까지 포함됐다”면서 “추천 책임이 있는 현 교단 지도부의 무능과 자신감 부재, 시대와 대중의 뜻을 읽지 못하는 심각한 폐쇄성을 그대로 보여준다”라고 비판했다.
개혁연대는 후보자 추천의 공정성을 의심하면서 후보자추천위원회가 3배수 후보자 명단을 확정한 과정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국의 출가단이 후보자추천위원회에 처음 추천한 인물들로 구성된 5배수 후보자 명단(90명)을 개인별 순위까지 포함해서 공개하라는 요구다. 개혁연대는 “어느 지역에서 크게 물의를 일으키고 지역민에게 재산상 피해를 입힌 국회의원이 책임지고 사퇴했다가 다음 선거에서 또 후보로 나선다면 일반 대중이 용납하겠는가”라면서 “이들을 다시 정수위 단원으로 추천한다면 오류 투성이 전서를 환수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자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주장했다.
개혁연대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선거제도뿐만 아니라 정수위 단원에 선출되는 자격을 두고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있다”면서 “개혁 필요성에 동의하는 교무(성직자)들이 구성한 단체도 있다”고 강조했다. 전서 사태를 계기로 교단 전반을 쇄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주장이다. 개혁연대는 전북 익산시의 원불교 중앙총부 앞에 교단 개혁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앞으로도 문제 제기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에 대해서 원불교 수위단원 선거관리위원회는 규정과 절차상 문제가 없으며 사회적 잣대를 종교에 들이대는 것도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전임 수위단원들이 총사퇴한 것은 책임을 묻는 동시에 재신임을 묻자는 결정이었다고도 해명했다. 전서 사태가 모든 수위단원이 책임져야 할 일인지도 따져볼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선관위는 무엇보다 후보자를 추리는 권한은 후보자추천위에 있다고 강조했다. 애초에 후보자추천위가 교계 내부에서 5배수 후보자 명단을 추천받은 이유는 교단 내부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였지, 대중에게 최종적 추천 권한을 준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후보자추천위가 후보자를 외부에서 추천받은 경우는 이번 선거가 처음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사회의 잣대로 보면 순위를 가려서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 맞을 수 있지만 종교에는 종교만의 기준이 있다"라면서 "(개혁연대의 요구대로 추천받은 후보자들의) 등수를 공개하는 순간 1등부터 쭉 (후보자로) 추천해야하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