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과정에서 아내를 잃은 남편이 의료감정을 기피하는 상급종합병원을 향해 애끓는 호소를 하고 나섰다. 아내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경위를 풀 새로운 단서가 확보됐는데, 병원들이 감정 자체를 거부하면서 진실규명은 커녕 재판 일정만 지연되고 있어서다.
8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고양시청 직원인 이성빈(47)씨는 지난해 4월 일산 A산부인과 의료진 등을 상대로 낸 의료과실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에 일산 B종합병원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영상감정 의견서를 냈다. B병원은 제왕절개 수술 후 과다출혈로 응급상황에 처한 아내가 이송돼 치료받은 상급병원이다.
이 전문의는 의견서에 “제왕절개 수술 중 발생한 출혈은 일종의 외상성 출혈로 판단된다”며 “환자의 자궁동맥 발달 정도, 출혈 분포, 영상 자료 등을 볼 때 자궁근무력증에 의한 출혈 양상은 아니었다”고 썼다. 환자의 사망과 제왕절개 수술과의 인과관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자궁근무력증은 분만 후 자궁 수축이 잘 안돼 지속적으로 출혈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해당 전문의는 또 “이미 B병원 내원 때부터 매우 좋지 않은 생체징후, 출혈 양상을 보였다”며 초기 응급조치가 미흡했던 점도 지적했다.
이는 자궁근무력증에 의한 과다 출혈로 사망한 것이란 A병원 주장과 상반되는 것이어서 향후 재판에 새로운 증거자료로 떠올랐다. 유족 측은 수술과정에서 자궁동맥이 파열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씨는 의료과실 가능성을 제기한 감정서에 희망을 걸었지만, 기대는 곧 무너졌다. 법원이 객관성을 담보하려 지난해 5월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3곳에 해당 의견에 대한 감정을 요청했으나, 모두 거부됐기 때문이다.
거부 이유는 ‘업무과다, 감정분야 상이’ 등이었다. 같은 해 7월 4번째 감정을 요청한 수도권 대학병원은 아예 1년 넘게 묵묵부답이다. 법원의 회신촉구도 묵살됐다.
이씨는 “엄마 없이 태어난 딸이 벌써 5살이 됐는데, 진실규명의 벽은 너무 높다”며 “제발 영상감정이 맞는지 사실 그대로만 확인해 달라”고 병원에 호소했다.
그는 “아내가 2017년 A산부인과에서 출산 후 수혈도 못 받고 2주 만에 숨졌다”며 이듬해 소송을 제기 했으나, 1심에서 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