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이 과도 내각을 구성하며 차츰 ‘국가’ 체계를 갖춰 가는 가운데 국제사회가 이를 승인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여성은 물론 다양한 민족 대표가 과도내각에서 배제되면서 탈레반 정부를 마뜩잖게 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지만 탈레반은 20년간의 '숙적' 미국과도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일(현지시간) 탈레반의 과도내각 구성원 발표에 대해 “새 정권은 미국과 동맹국, 아프간 협조자의 대규모 철수 이후 정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을 인용해 새 정부의 편향성을 지적했다. 알리 야와르 아딜리 아프간 분석가 네트워크 책임자는 FT에 “(새 정부는) 포괄적이지 않다”며 “내무장관 등 일부 각료가 (서방의) 제재 목록에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와 탈레반의 관계는 복잡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탈레반이 발표한 새 내각 구성을 ‘배타적’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탈레반 정부를 지켜볼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인 듯하다. 미국 국무부는 이날 성명을 발표해 “(아프간 과도정부 내각) 명단에 오로지 탈레반이나 제휴 조직원들만 이름을 올렸고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면서 “몇몇의 소속과 행적도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말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으로 탈레반을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내각이 ‘대행’ 수준이란 점을 감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탈레반이 이슬람 근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국제사회 기준에 부합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FT는 “미국과 지역 강국들이 탈레반 정부를 인정하기 위한 전제 조건 중 하나는 탈레반이 포용적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분석가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이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핑곗거리도 충분하다. 오바이둘라 바히르 카불 아메리칸대학 강사는 FT에 “배타적 정부 구성에 대해 비판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탈레반들은 ‘일시적 정부’라는 이유를 대면서 빠져나가려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탈레반이 국제사회의 인정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탈레반은 국제사회 합류를 위해 손을 계속 뻗을 것으로 보인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이웃 국가들과 대화 채널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샤힌 대변인은 “우리는 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한 역내 그리고 이웃의 다른 국가들과 관계를 원하지만, 그 대상에서 이스라엘은 제외”라고 말했다. '유대 민족주의'에 맞서는 아랍권 국가들 편에 선다고 못 박은 것이다. 또 “새로운 (역사의) 장에 미국이 양국과 양국 국민의 이해와 관련해 우리와 관계 맺기를 원하고, 아프간 재건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면 환영한다”고 밝혔다. 20년간 적대관계였던 미국과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