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뉴질랜드, 테러 터진 후에야 "테러방지법 보완"

입력
2021.09.0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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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테러범 삼수딘, 감시 대상이었지만
'테러계획은 범죄 아니다' 법 허점 공략
총리 "미래는 바꿀 수 있다" 테러법 개정 약속


뉴질랜드가 테러방지법 강화 고삐를 조이고 있다.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를 지지하는 스리랑카 출신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7명이 부상하면서다. 기존 테러방지법이 처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테러를 예방하기에는 불충분했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4일(현지시간) 이달 안에 테러방지법 강화 개정을 약속했다. 아던 총리는 “지나간 역사를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며 국회의원들이 테러방지법의 허점을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 파포이 뉴질랜드 법무장관은 지난달 테러를 하지 않더라도 테러를 계획하는 것을 불법으로 만드는 테러법 개정을 추진했다. 아던 총리는 “의회가 재개되는 즉시 그 작업을 완료할 것”이라며 “가능한 한 빨리, 늦어도 이달 말까지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당국은 이날 테러범 아흐메드 아틸 모하메드 삼수딘의 신원을 공개했다. 삼수딘의 신상은 당초 뉴질랜드 형법상 ‘형사사건 공개 금지 조치(court suppression order)’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날 오후 해당 조치가 해제됐다. 삼수딘은 전날 오후 오클랜드의 한 슈퍼마켓에서 흉기를 휘둘러 7명을 다치게 했고 그중 3명을 중태에 빠뜨렸으며 범행 직후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삼수딘은 이번 범행 전에도 경찰의 감시 목록에 올랐던 것으로도 확인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삼수딘은 2016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테러와 극단주의를 지지하는 글을 올리면서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됐다. 이후 2018년 칼을 구매하려다 적발됐고, 집에서 보관하던 IS 관련 영상물도 발각된 끝에 수감됐다.

삼수딘이 석방된 후 테러를 저지를 위협이 있다는 우려에 지난 7월 뉴질랜드 정부는 테러방지법 등을 통해 그에게 추가 혐의를 적용하려 했으나 법원은 문제의 영상물에 살인과 관련된 장면이 없다며 이를 순교를 다룬 콘텐츠로 인정하면서 1년의 보호관찰 명령과 함께 그를 석방했다. 범행 53일 전이었다.

경찰은 30명의 인력을 동원해 감시를 이어갔지만 테러를 방지할 수는 없었다. 단지 사건 발생 1분 만에 삼수딘을 사살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가디언은 “당국은 삼수딘이 테러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뉴질랜드에서 테러를 계획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현행 테러방지법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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