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는 시작에 불과… 영화감독 안방 공략 이어진다

입력
2021.09.0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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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한준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데뷔 영화 ‘차이나타운’(2015)이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며 주목받은 충무로 신진이다. 182만 명이 관람한 ‘뺑반’(2019) 다음 작업으로 ‘D.P.’를 택했다. 넷플릭스가 한국 영상 산업의 주요 돈줄로 부상하던 때였다. 영화감독의 드라마 겸업은 흔치 않았을 시기다. 2년가량이 지난 지금, 웬만한 국내 영화감독은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올해 공개를 앞두고 있는 화제의 드라마 다수가 유명 영화감독 작품이다. ‘D.P.’가 지핀 올해 영화감독 드라마 열풍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황동혁, 연상호, 김지운, 이재규 신작 줄 이어

4일 첫선을 보여 단번에 눈길을 끈 JTBC 드라마 ‘인간실격’은 허진호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 ‘덕혜옹주’(2016) 등의 허 감독은 감성 연출 1인자로 꼽힌다. 중년 여성 부정(전도연)과 청년 강재(류준열)의 은밀한 관계를 흡입력 있게 그리고 있다.

27일엔 황동혁 감독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황 감독은 ‘도가니’(2011)와 ‘수상한 그녀’(2014) 등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를 선보여왔다. ‘오징어 게임’은 상금 465억 원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 게임을 펼치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산행’(2016) 등으로 유명한 연상호 감독은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연내 선보인다. 사람들을 천국이나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 한 신흥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드라마 ‘방법’ 등의 극본을 쓴 연 감독의 상상력과 연출력이 기대된다. 드라마임에도 9일 개막하는 토론토국제영화제와 다음 달 6일 막을 올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 각각 초청됐다.

김지운 감독은 첫 드라마 ‘닥터 브레인’을 연말 애플TV플러스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9)과 ‘밀정’(2016) 등 여러 화제작을 내놓았고, 할리우드에서 ‘라스트 스탠드’(2013)를 연출해 해외에서도 관심이 크다. 한 뇌과학자가 아내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관계자들의 뇌에 접속해 단서를 찾는 과정을 그린다.

TV에서 이력을 시작해 영화에까지 진출한 이재규 감독은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으로 돌아온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극한의 상황을 담는다. 드라마 ‘다모’(2003)와 영화 ‘완벽한 타인’(2018)을 히트시킨 이력의 이 감독이라 기대가 크다.

'영화보다 드라마' 현상 당분간 지속

감독들의 드라마행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장 경쟁 격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더욱 늘고 있다. 코로나19로 극장 관객이 70%가량 증발한 상황에서 OTT의 영화감독 모셔가기가 이어지고 있다. 요즘 충무로에선 “영화 만드는 영화감독이 없다”는 말이 나돈다.

드라마에 대한 인식 변화가 영화감독의 드라마 진출에 힘을 실어주고 있기도 하다. 드라마 제작 환경이 개선된 상태에서 영화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OTT는 지상파방송이나 종합편성채널 등에 비해 표현 수위가 높은 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영국에서 만든 첫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2018)을 자신의 작품 중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감독은 미국에서 드라마 ‘동조자’를 만들 예정이다.

내년에 선보일 영화감독의 드라마는 더 많다. 영화 ‘특별시민’(2017) 등의 박인제 감독은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 작업 중이다. 박 감독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로 국내외에서 화제를 모았다. ‘왕의 남자’(2005) 등으로 사극의 대가로 불리는 이준익 감독은 티빙 드라마 ‘욘더’ 연출을 맡는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의 홍종찬 감독은 김혜수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 ‘소녀심판’ 연출을 맡았다. ‘상의원’의 이원석 감독은 ‘위기의 여자’를, ‘특종: 량첸살인기’(2015)의 노덕 감독은 ‘글리치’를 넷플릭스에 만들고 있다. ‘오케이 마담’(2020)의 이철하 감독은 쿠팡플레이 드라마 ‘청와대 사람들’을 선보인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영화감독들이 기존 국내 드라마가 지닌 천편일률의 서사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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