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서 불법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이 2일 새벽 구속됨에 따라 문재인 정부 임기 말 노·정 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권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다음 달 대규모 총파업으로 맞서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보건의료노조 파업 철회에 이어 위원장 공백까지 겹치면서 투쟁 동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3시 서울 중구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기톱과 빠루(쇠지렛대) 등 장비를 이용해 출입문을 뜯어내고 민주노총 사무실을 폭력침탈해 위원장을 강제연행한 것은 과거 어느 정권도 하지 않은 만행"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에 민주노총과 민중진영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고 항의했다. 양 위원장은 7월 3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감염병예방법과 집시법, 도로교통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지난달 13일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1995년 민주노총 창립 후 위원장이 구속된 것은 6번째이지만, 경찰이 본부 사무실에 진입해 강제구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9년 문재인 정부 임기 중에 구속됐던 김명환 전 위원장은 정치권의 중재에 따라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노동계에선 사상 초유의 사태라는 반응이 나왔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가 (방역 실패의) 책임을 면피할 대상을 민주노총으로 삼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양경수 위원장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정의당 여영국 대표도 "문재인 정부의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 전혀 다르지 않다"며 "집회결사의 자유를 마땅한 권리로 행사한 시민들에 대한 반헌법적 폭력"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 정부와 민주노총이 사실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와 민주노총은 김명환 전 위원장 시절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가능성을 보이기도 했으나, 올해 초 '강경파'로 분류되는 양 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사사건건 대립을 이어갔다. 양 위원장은 취임 초부터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을 '반(反)노동자적'이라고 규정하며 올해 대규모 총파업을 성사시키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민주노총은 정부와의 대립각을 명확히 하며 투쟁 수위를 더 높인다는 방침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중앙집행위원 8명이 삭발했고, 10월 20일 총파업에 앞서 3일부터 16개 가맹조직, 16개 지역본부에서 간부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양 위원장은 종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이후 항의 단식에 돌입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달부터 본격적인 '추투(秋鬪)'를 예고한 상태다. 산하 공공운수노조 전국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가 14일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고, 공공기관 비정규직과 돌봄노동자들도 정부에 노정교섭을 촉구하며 속속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0월 20일 총파업 규모가 1987년 이후 최대인 110만 명에 이르리라 장담하고 있다.
구심점을 잃은 상황에서 총파업 준비가 제대로 이뤄질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준비된 총파업'을 하겠다는 게 양 위원장의 핵심 공약이었는데 가장 중요한 순간에 구속됐다"며 "무리하게 집회를 강행한 것이 전략적 판단 미스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고 했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노정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가고 있지만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노동계와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더 큰 파국을 막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