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국회를 통과한 ‘개정 군사법원법’은 73년 역사의 군 사법제도에 한 획을 그었다. 고등군사법원을 전면 폐지하고, 군인의 △성범죄 △사망사건 △입대 전 범죄의 수사ㆍ재판을 민간에 넘겨 군 사법기능을 대폭 축소시켰기 때문이다. 30곳이 넘었던 보통군사법원은 5개로, 90여 곳에 이르는 군 검찰단 역시 4개로 쪼그라든다.
그러나 일각에선 ‘미완의 개혁’이라고 성토한다. 엄격한 위계질서 탓에 사법권 독립이 요원한 군사법원을 평시에는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쟁도 안 터졌는데 왜 군사법원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갈등은 꽤 심각해 보인다. 국방 개혁의 밑그림을 그리는 민관군 합동위원회 일부 위원들은 군 당국이 ‘평시군사법원 폐지’ 권고를 묵살했다며 위원직을 던졌다. 반면 국방부는 특수한 군 조직 체계를 유지하려면 군사법원이 존치돼야 한다고 항변한다. 누구 말이 맞을까. 향후 군 사법제도 개혁 과정에서 급부상할 평시군사법원 존폐 이슈를 쟁점별로 짚어봤다.
찬반 양론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치는 논점이다. 폐지론자들은 군사법원을 없애도 매년 정부 차원의 훈련으로 대비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평시군사법원 폐지 법안을 발의한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은 1일 “정부가 매년 비상사태에 대비해 을지연습을 하는데, 이때 민간법원을 전시 군사법원체제로 전환시키는 훈련도 포함하면 된다”면서 “군사법원만 늘 전시체계로 운영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존치론자들은 군 법무 조직이 사라지면 급박한 개전 초기에 제 기능을 발휘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평시에 잘 가동돼야 전쟁이 나도 무탈하다는 논리다.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지낸 임천영 변호사는 “전시가 되면 부대마다 인원이 증편되고 군무이탈이나 항명 등 범죄도 급증해 혼란이 가중되는데 1년에 한 번 훈련한 법조인들이 신속한 재판이 가능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전투 승패에 무한책임을 지는 지휘관들이 재판 지연으로 병력을 제때 이끌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을 법조인들이 오롯이 질 수 있느냐는 반문이다. 실제 무방비로 습격당한 6ㆍ25전쟁 당시 서울은 사흘 만에 함락됐다.
세계적으로 폐지 추세는 맞다. 나치 악몽을 겪었던 독일을 비롯해 프랑스, 대만, 터키 등은 군사법원 자체가 없다. 군사 사건의 경우 민간법원에서 군사전담 재판부를 만들거나 전문가 조언을 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문제는 한국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국가라는 점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를 유지해 비교 대상으로 볼 수 없다”며 “미국, 중국, 러시아 같은 대규모 군대를 보유한 나라나 이스라엘 등 분쟁국들은 평시에도 군사법원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단 2013년 ‘홍중추 하사 사망사건’을 계기로 군사법원을 폐지한 대만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는 있다. 역사상 가장 길었던 38년간 계엄이 유지됐던 대만은 군을 향한 국민의 불신이 뿌리 깊은데 우리도 크게 다른 상황은 아니다.
이번 법 개정을 통해 지휘관이 판사 자격이 없는 일반 장교를 재판장으로 지정해 ‘봐주기 판결’이 가능했던 심판관 제도와 선고 형량의 3분의 1 범위에서 감경할 수 있는 ‘관할관 제도’도 평시에 한해 폐지됐다. 그러나 계급 위주로 돌아가는 군에서 지휘관 눈치를 보지 않고 100% 독립된 판결을 내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폐지론자들도 이런 폐쇄적인 구조가 조직적 범죄 은폐와 축소로 이어지고, 군인의 ‘정당하게 재판 받을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임 변호사는 “군인들이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받고 민간인은 처벌받지 않는 군무이탈, 항명으로 법정에 서는 건 군사적 필요성 때문”이라며 “헌법재판소도 군의 특수성을 인정해 1996년 재판관 전원이 군사법원 존치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