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동안 건설 현장에서 일했지만 이런 곳은 처음입니다."
31일 오전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시공하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6구역 주택재개발 신축현장 입구에는 '작업중지권은 여러분의 권리입니다'라고 적힌 큼지막한 패널이 설치돼 있었다. 한글 아래의 영어와 중국어도 같은 내용이었다.
입구뿐 아니라 현장사무소 회의실을 비롯해 공용 공간에도 '작업중지권' 안내문이 여기저기 게시돼 있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규정한 작업중지권은 급박한 위험이 있거나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는 권리다.
삼성물산은 올해 3월 국내외 전 사업장에서 선포식을 열어 꼭 급박한 위험이 아니더라도 폭넓게 사용할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을 전면 보장했다. 카카오톡 대화방, 통합상황실 전화나 가까이 있는 관리자에게 "작업중지합니다"라고 알리면 된다. 공사 중단으로 발생하는 협력사의 손실은 보상해주기로 했다.
협력사 직원을 포함해 450여 명이 일하는 용두6구역 신축현장에서도 6개월간 작업중지권이 108건 사용됐다. 엘리베이터 난간 임의 해체 후 미복원, 사다리 위 단독 작업, 거푸집 설치상태 불량 등 사소한 위험이 대부분이었지만 노동자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협력사 작업반장 손승조씨는 "26년간 일했어도 다른 현장에서는 작업중지권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 교육을 받고 알게 돼 직접 사용하기도 했다"며 "다른 현장으로도 확산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협력사 설비소장인 어수안씨는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우리 직원들도 지금은 잘 사용한다"면서 "공사에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금방 조치가 끝나 엄청나게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전했다.
삼성물산은 안전사고 예방 방안을 고심하다 현실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작업중지권을 꺼내들었다. 현장의 위험 요인은 노동자들이 가장 잘 안다고 판단했다. 시행 6개월이 지나며 작업중지권이 현장에 뿌리를 내리는 분위기다.
삼성물산에 따르면 올해 3월부터 현재까지 국내외 총 84개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행사는 총 2,175건이다. 월평균 360건이고, 이 중 98%(2,127건)는 작업중지 요구 후 30분 이내에 조치가 가능했다.
위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작업 중지를 요청한 사례로는 높은 곳에서 작업 시 추락 관련 안전조치 요구(28%·615건), 상층부와 하층부 동시작업 또는 돌풍에 따른 낙하물 위험(25%·542건)이 절반 이상이었다. 무더위나 기습폭우 등 기후에 따른 작업중지 요구도 적지 않았다.
삼성물산은 작업중지권 행사를 권장하기 위해 인센티브와 포상도 내걸었는데, 6개월 동안 약 1,500명에게 1억6,600만 원을 지급했다. 앞으로는 작업중지권 발굴·조치 앱(S-Platform)을 개발해 위험사항 접수와 조치 채널을 일원화할 계획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스스로 안전을 확인하고 작업하는 문화가 정착되도록 작업중지권 사용을 더욱 활성화하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