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기도 봉합 안 해 영아 뇌손상… 유명 대학병원 ‘의료과실’ 억대 배상 판결

입력
2021.09.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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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절개관 이탈로 43분간 저산소증·저혈압
생후 7개월 아이, 후유증으로 식물인간 상태
법원 "뇌손상과 의료진 과실 인과관계 상당"
서울시내 대학병원에 2억8000만원 배상 판결

희소 질환을 앓던 생후 7개월 된 영아가 서울 소재 유명 종합병원에서 기관절개술을 받은 후 뇌손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법원은 병원 측이 봉합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의료 과실을 인정, 피해자 측에 수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1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 이병삼)는 지난달 13일 피해자 측이 해당 병원이 속한 대학법인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2억8,125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A군의 뇌손상과 의료진 과실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에 따르면 A군은 신체 여러 곳에 기형을 유발하는 희소 질환인 '차지증후군(CHARGE syndrome)'을 앓으면서, 눈 조직 결함과 코 안쪽 막힘 등의 증상을 보였다. 2018년 1월 해당 병원에 입원한 A군은 같은 해 5월 11일 산소 공급을 위해 인공기도(기관절개관)를 기도에 삽입하는 기관절개술을 받았다.

문제는 같은 달 26일 A군의 기관절개관을 소독하고 삽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담당 간호사는 기관절개관 고정 부위가 풀려 피부에 제대로 봉합되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즉시 의사에게 알렸다. 의사는 이를 인지하고 봉합하기로 결정했으나 정작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기관절개관이 완벽히 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간호사는 A군을 범보의자에 앉혔고, 결국 기관절개관은 목 바깥으로 밀려나왔다. 의료진이 이 사실을 알았을 땐 A군의 산소포화도가 정상 범위에 훨씬 못 미치는 86%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다시 인공기도 삽입을 시도해 20분 만에 기도를 확보했다. 기관절개관 이탈부터 기도 확보까지, A군은 43분 동안 저산소증과 저혈압 상태에 놓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후 신체감정서에 따르면 A군은 인지, 운동, 감각, 언어 등 외부 자극에 반응 없이 생명만 유지하고 있는 식물인간 상태다. 원인은 저산소성 허혈성 뇌손상의 후유증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2019년 7월 기준 감정의는 A군의 기대수명을 향후 3년으로 판단한 상황이다.

병원 측은 기관절개관 이탈 즉시 기도에 관을 삽입하려 시도했지만 차지증후군으로 인해 시간이 지체된 것이므로 의료진 과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A군 보호자 측은 기관절개관을 다시 삽입하는 것이 어려웠다면, 우선 산소 공급을 위해 절개 부위를 열어서라도 기도를 확보하는 등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는 입장이다. 의료진이 수차례 관 삽입을 실패하는 과정에서 A군이 뇌손상을 입게 됐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의료진은 간호사로부터 A군 기관절개관 피부 봉합이 대부분 풀려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즉시 재봉합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범보의자에 앉혀 홀로 방치했다"며 "기관절개관 이탈을 발견하고도 20분 뒤에야 기도를 확보해 결국 A군에게 뇌손상을 입게 했으므로 과실이 인정된다"고 봤다.

또한 "기관절개관 이탈 시 치명적 결과가 예견됐던 만큼 의료진은 더 철저히 관리하고 응급상황에 대비할 의무가 있었다"며 "이 사고로 지속된 저산소증과 저혈압이 A군 뇌손상의 원인이라 인정할 수 있으므로 진료상 과실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A군이 앓고 있는 희소 질환의 특성으로 인해 사후 조치가 늦어진 점, 기관절개관이 목끈으로도 고정돼 있어 의료진이 이탈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려웠던 점 등을 고려해 병원 측 책임을 30%로 산정했다. 양측이 1심 판결 후 항소를 제기하면서 서울고법에서 2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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