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코로나19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사상 최저 수준(연 0.5%)까지 내렸던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전격 인상하면서, 1년 3개월간 유지돼 온 초저금리 시대도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통화당국이 폭증하는 가계빚 증가세를 잡고 과열된 자산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금리 인상의 칼을 결국 뽑아 들면서, 그동안 저금리 혜택을 누려온 경제주체들의 부담도 늘어나게 됐다. 특히 한은이 추가 금리 인상도 강하게 시사하고 있어, 저금리 시대 급증한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빚투족'(빚내서 투자)은 향후 감당하기 힘든 이자 부담 압박에 내몰릴 가능성이 커졌다.
한은은 26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열어 기준금리를 종전 연 0.5%에서 0.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지난해 5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 충격이 커지고 있다는 판단에 그해 3월 0.75%까지 낮춘 기준금리를 두 달 만에 사상 최저로 낮춘 지 1년 3개월 만의 인상이다.
한은은 코로나19 4차 대유행의 한복판에서도 추가적인 경기 부양보다는 금융 안정을 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수출과 투자를 중심으로 국내 경기 흐름이 나쁘지 않은 데다, 물가상승률 역시 한은의 목표치(2%)를 웃도는 2%대 중반을 기록하면서 우리 경제가 0.25%포인트 수준의 금리 인상은 감내할 수 있고, 또 감내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 인상 직후 열린 설명회에서 "현재 경기 상황과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때 지금의 통화금융 상황도 완화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실질금리 수준 역시 여전히 큰 폭의 마이너스인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이번 금리 인상이 실물경기를 제약하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에 칼을 빼든 결정적인 이유는 역대 최대 수준까지 불어난 가계빚과 맞닿아 있다. 한은은 초저금리가 지속될 경우 경제주체들의 과도한 차입(빚)에 의한 수익추구 행위가 위험수위에 도달하고, 이는 자산가격 폭등으로 이어져 금융불균형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경고를 수차례 해 왔다.
실제로 금융당국의 대출 억제에도 가계신용(빚) 잔액은 1,806조 원(6월 말 기준)에 달한다. 1년 새 170조 원 가까이 불어난 것으로, 부동산 가격 급등 흐름을 타고 올해 상반기에만 약 78조 원이나 급증했다. 이 같은 금융불균형을 해소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만큼, 더 늦지 않은 시기에 금리 인상이란 수단을 꺼내 들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이 총재는 "저금리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란 기대가 있는 한 당국의 (대출규제 등) 거시건전성 정책의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자연스럽게 경제주체들의 차입비용이 높아지고 자산투자 수요를 제약하게 돼 민간신용 증가세를 완화하는 데는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1,800조 원이 넘는 빚을 떠안은 가계와 코로나 여파에 허덕이는 기업 등을 중심으로 이자 부담 압박이 거세질 전망이다. 이미 시중 대출금리는 기준금리 인상을 선반영하면서 오름세가 이어진 지 오래다.
여기에 한은은 현 0.75%도 여전히 완화적 수준인 만큼 시차를 두고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을 내비친 상태다. 시장에서도 한은의 금리 정상화 의지가 강력한 만큼 연내 한 차례 금리 추가 인상을 점치는 목소리가 높다.
이 총재는 "서두르진 않겠지만 지체하지도 않겠다는 공감대가 금통위원들 사이에 있다"며 "추가 인상은 코로나 상황과 미국 통화정책 방향, 금융불균형 상황 등을 보고 고민할 문제"라고 했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 회의는 올해 10월과 11월 두 차례 남았다.
영끌과 빚투에 나선 대출자를 중심으로 추가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부터 저금리를 활용해 소득수준이 비교적 낮은 2030 젊은층의 부채가 크게 늘어난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한은에 따르면 금리가 1%포인트 뛰면 이자 부담은 12조 원 가까이 늘어난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가 0.25%포인트 올라도 가계 재정에는 당장 큰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문제는 추가 인상이 이어질 경우 부담이 가파르게 증가한다는 점"이라며 "거세지는 대출 상환 압박이 추후 자산시장 가격 급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도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