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음악을 연주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입력
2021.08.2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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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창작 뮤지컬 '금악(禁樂)' 29일까지 경기아트센터

지난 18일 개막한 창작 뮤지컬 '금악(禁樂)'은 제목 그대로 '금지된 음악'에 관한 이야기다.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극은, 조선시대 궁중 음악을 담당했던 관청 장악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판타지 사극이다. 예술을 특히 사랑한 왕족으로 알려진 효명세자 이영과 악공들이 주인공이다. 인간의 욕망으로 태어난 유령 '갈'은 또 다른 주역이다. 갈은 금단의 악보를 해독하면 봉인이 풀리는 존재로서, 궁중을 혼란에 빠트린다.

극에서 연주가 금지된 악보를 손에 넣고 음악을 해독하는 자는 갈의 주인이 되면서 초능력을 갖는다. 이런 설정은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 플롯을 닮았다. 다만 중심 소재를 음악으로 삼은 것은 이색적이다. 극에는 음계의 활용이나 조선시대 당시 작곡에 관한 규칙 등 음악 이야기가 가득하다. 지극히 한국 고유의 서사와 동양적인 연출 기법으로 극을 끌어간다는 점에서 기존의 판타지물과 차별화를 꾀했다.

시간적 배경이 조선이기 때문에 '금악'의 음악은 국악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배우들은 동양화를 닮은 창(唱)을 부르며 넘버들을 소화한다. 한이 서린 애잔한 곡조가 많다. 다채로운 국악기 소리도 넘버만큼 매력적이다. 공연장 피트에는 서양악기 오케스트라가 아닌,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중심을 잡는다. '금악'의 연출도 시나위오케스트라의 원일 예술감독이 맡았다. 극 중 궁중 연회를 준비하는 장면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악공 복장을 하고 피트에서 솟아올라 무대에 참여한다. 독특한 발상의 연출이다.

경기아트센터가 지난해 초부터 기획한 '금악'은 창작극임에도 대극장 공연을 염두에 두고 제작됐다. 앙상블을 포함한 배우 40여 명과 오케스트라 단원 30여 명이 투입된 대작이다. 극에는 뮤지컬 배우뿐만 아니라 극단 배우와 무용수까지 등장한다. 덕분에 '금악'은 때로는 연극처럼, 또 전통무용 공연처럼 객석에 다가온다. 국내 뮤지컬 시장을 주름잡는 라이선스 작품들이 주로 서양 콘텐츠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토종 창작극 '금악'의 초연은 공연계에 반가운 소식이다.

'금악'에 출연하는 배우 가운데 갈 역을 맡은 추다혜의 열연은 극의 풍미를 끌어올리고 있다. 평소 국악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룹 '추다혜차지스'의 보컬이자 서도민요 소리꾼인 그는 욕망을 분출하는 넘버 '갈' 등을 부르며 시원한 성량과 몽환적인 음색을 뽐냈다. 요염한 연기 역시 객석의 호평을 받고 있다. '금악'은 추다혜의 뮤지컬 데뷔 무대다.

이 밖에 전통 악보인 정간보를 본떠 만든 네모난 무대와 조선의 집권 세력인 사림(士林)을 상징하는 소나무 프로시니엄은 극의 동양적 운치를 더한다. 장면 곳곳에서 등장하는 초대형 스크린은 무대예술의 한계를 극복하며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조선의 궁중 복식을 일정 부분 고증하면서도 상상력을 가미한 의상도 지루함을 덜어준다.

다만 초연 창작극 특성상 개선이 필요해 보이는 지점도 있었다. 대극장 공연치고는 다소 짧은, 2시간 정도의 공연시간 안에 극이 흘러가다 보니 이야기 전달이 불친절하거나, 서사적 개연성이 떨어지는 대목들이 관찰됐다. '금악'은 29일까지 수원 경기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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