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A씨는 올해 초 월급으로 186만 원(세전 기준)을 받았다. 5년 넘게 상담원 일을 했는데도 최저임금(179만 원)보다 고작 7만 원이 많다. 그런데 건보공단이 지급하는 1인당 인건비는 265만 원에 이른다. 이 중 50만 원가량은 A씨가 속한 민간 위탁업체가 가져가고, A씨 몫으로 책정된 직접인건비는 220만 원이다. 그럼에도 매달 A씨 통장에 찍힌 급여는 대부분 숫자 '1'로 시작한다. 이유가 뭘까.
답은 '인센티브제'에 있다. 위탁업체들은 상담원들에게 최저임금 수준을 기본급(179만6,000원)으로 책정하고 나머지는 인센티브를 통해 지급한다. 사실상 매달 직접인건비에서 30만 원 정도를 갹출한 뒤 자신들이 정한 기준에 따라 평가 점수를 매겨 급여를 차등 지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같은 센터 안에서도 임금이 179만 원에서 최고 250만 원까지 차이가 생길 수 있다. A씨가 받은 186만 원도 인센티브 8만 원이 포함된 액수다. 통상적인 인센티브는 회사가 초과이익을 나눠주는 개념이지만, 여기선 가로챈 직원 급여를 인센티브란 명목으로 주고 있는 셈이다.
24일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는 이런 실상을 알리기 위해 노조 설립이 늦었던 대구센터를 제외한 전국 11개 센터에서 일하는 조합원 748명의 월급 내역서를 모두 공개했다. 자료를 보면 540명(72%)의 조합원 월급이 직접인건비에 미치지 못했다. 서울1센터의 예를 들면 59명 가운데 51명이 직접인건비보다 적은 월급을 받았다. 가장 적게 받은 사람은 182만3,000원,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227만7,000원이다.
위탁업체들이 실시한 대표적인 인센티브 제도는 '생산성 프로모션'이다. '콜 수'(상담 전화를 받은 횟수)를 가장 많이 채운 상담사는 5만 원, 가장 적게 채운 상담사는 1만 원을 준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횟수가 가장 적고 상담 전산 처리도 가장 빠른 상담사 10명에게 상품권 5,000원을 지급하는 '최소 이석+후처리 프로모션'을 진행한 센터도 있었다.
상담원들은 인센티브 제도로 인해 근무 환경이 악화하고 건보공단 업무의 공공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조합원은 "프로모션 때문에 20분 안에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건수가 중요하니 민원 전화가 와도 대충 빨리 끊게 된다"고 했다. A씨는 "최저임금을 받는 입장에서 인센티브 몇만 원은 큰돈이 아닐 수 없다"며 "배고픈 원숭이들에게 바나나 하나 던져주고 싸우라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말했다.
인센티브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금액이 사라진다는 문제도 있다. 가령 서울1센터는 59명에게 지급된 금액을 합하니 직접인건비보다 652만 원이 적었다. 나머지 11개 센터도 2곳을 제외하면 30만~671만 원 정도씩 적게 지급됐다. 위탁업체 측은 "매월 발생하는 차액은 연말에 성과급 형태로 지급하거나 인센티브 지급을 위한 프로모션 행사에 경품으로 사용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용재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성과금이 매년 나오는 게 아닌 데다 업체들이 중간에 착복했다고 해도 확인할 수 없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노동계에선 '신종 중간착취'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통상적인 중간착취는 외주화 과정에서 위탁업체가 도급비로 가져가는 비용을 이르는 말인데, 직원에게 책정된 직접인건비마저도 인센티브를 빌미로 착취를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조 측은 이런 기형적인 센터 운영과 임금 체계를 '원청'인 건보공단이 방치,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유라 고객센터지부 경인지회 부지회장은 "건보공단의 협력사 평가 지표를 보면 집중기 1인당 평균 응대 건수 달성 비율을 99%로 설정해놓은 항목이 있는데, 위탁업체들은 이런 지표를 근거로 상담원들을 극단적인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은 "위탁업체와의 계약서에 직접인건비를 220만 원 이상으로 한다는 문구가 있지만, 업체가 자율적으로 임금 체계를 정하거나 인센티브를 시행하는 것에 관여할 권한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