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장관 다녀갔지만… '면피용 폭염대책'만 내놓은 쿠팡

입력
2021.08.23 15:49


"고용노동부 장관이 다녀간 후 얼음물을 지급하는 등의 작은 변화는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쿠팡은 장관이 현장을 찾아와도 꿈쩍하지 않는 회사다."

23일 경기 고양시에 있는 쿠팡물류센터에 근무하는 박민하씨가 밝힌 근로 현장 분위기다. 낮 기온이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지속되자 지난 5일 안경덕 고용부 장관은 20일까지를 '폭염 대응 특별주간'으로 지정하며 쿠팡 고양물류센터를 찾았다. 안 장관은 "(기업들의 폭염 대응이)'보여주기식'이라 해서 확인하러 왔다"며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음에도 작업을 중지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특별주간이 끝나도록 체감할 만한 변화는 없었다는 게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다. 장관 방문 후 쿠팡 측이 '면피용' 대책을 내놓기는 했지만, 대부분 실효성이 떨어지는 내용이라는 주장이다.

유통업체들의 대규모 물류센터는 더위나 추위에 취약한 시설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천장이 높아 냉·난방기 설치가 쉽지 않고, 상품을 더 많이 쌓기 위해 만든 복층 구조로 인해 공기 순환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민병조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장은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물류센터 내부 온도가 35도를 넘은 날이 10여 일이며, 새벽 4시 측정한 기온이 35.9도였다"며 "한겨울에는 밤새 핫팩 2개에만 의지해 추위를 견뎌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냉·난방기 확충과 휴식시간 보장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자 쿠팡 측은 8일 전국 물류센터에 생수와 아이스크림, 식염 포도당 등을 제공하고 에어컨과 대형 선풍기도 설치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에 대해 민 지회장은 "이동식 에어컨이 설치됐다고 하지만, 용량도 작고 3대 정도밖에 안 돼 넓은 공간을 다 감당하지 못한다"며 "물이나 아이스크림이 놓인 휴게실까지 왕복 15분이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 찾아가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노조 측은 정부의 관리 감독 기능이 좀 더 강화돼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민병조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장은 "안 들어도 그만인 권고 조치로는 노동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며 "쿠팡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당장 실시하고 강제성을 담은 종합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은 이런 지적에 대해 "휴게실과 작업 공간에 다양한 냉방설비를 설치하는 등 여러 대책을 추가로 준비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유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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