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갈등이 파국 직전에 멈춰 섰다. 이 대표가 한 발 물러서면서다. 그러나 잠정 봉합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뿌리 깊은 불신을 확인했고, 언제든 다시 파열음을 낼 수 있다. '보수진영 헤게모니를 누가 차지하느냐'의 싸움이다 보니, 어느 한쪽도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대표와 윤 전 총장은 최근 당내 대선주자 정책토론회를 놓고 불을 뿜었다. '대선 레이스 흥행과 대선주자 경쟁력 검증을 위해 토론회를 빨리, 많이 해야 한다'는 이 대표와 '이 대표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윤 전 총장이 맞붙었다. 결과는 이 대표의 일단 후퇴. 토론회 일정을 취소하고 형식도 바꾸기로 했지만, 사실상 '윤 전 총장이 승인하지 않는 토론회는 하지 않는다'는 사인으로 받아들여졌다.
패기 넘치던 이 대표의 리더십은 타격을 입었다. 윤 전 총장의 승리라고 볼 수도 없다. '토론을 주저하는 대선주자'라는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최고위원회는 17일 "18일에 잡혀 있었던 대선주자 정책토론회를 취소하고, 25일 토론회는 상호 토론이 아닌 비전발표회로 갈음한다"고 결정했다. 18, 25일 토론회는 이 대표가 꾸린 당내 대선후보 경선준비위가 잡은 것이었다.
17일 최고위는 이 대표가 여름휴가에서 복귀해 처음 주재한 당 지도부 회의였다. 다변에 달변인 이 대표는 이날 이례적으로 침묵했다. 언론에 공개하는 회의 모두발언부터 생략했고, 회의가 끝나고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았다. 최고위 결정을 수용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다만 이 대표의 침묵 덕분에 확전은 피했다.
국민의힘엔 조만간 여진이 닥칠 가능성이 크다. 대선후보 경선을 주도할 선거관리위 구성이 2차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이 대표는 경준위원장인 서병수 의원 등 자신과 뜻이 맞는 인사를 선관위원장에 인선하는 것에 무게를 싣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선관위 구성을 최고위가 주도하되, 이 대표 권한을 존중해 주는 모양새를 취하자는 의견이 오늘 최고위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그러나 서 위원장이 중립성을 상실했다고 보는 목소리도 상당해 이 대표 뜻이 관철될지는 미지수다.
17일 이 대표의 또 다른 ‘윤 전 총장 저격’ 발언이 알려진 것도 변수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최근 이 대표가 전화통화를 하면서 '윤 전 총장은 금방 정리된다'고 말했다"고 공개했다. '이 대표가 윤 전 총장을 떨어뜨리려 한다'는 일각의 의심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이에 이날 최고위에선 "이 대표가 발언을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고, 이 대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윤 전 총장도 활짝 웃을 순 없는 상황이다. 토론을 회피하는 것이 공정과 상식인가”(홍준표 의원), “토론의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국민들 보기 창피한 일”(유승민 전 의원) 등 이미 아픈 비판을 받고 있는 터다.
윤 전 총장의 김병민 대변인은 “경선 버스가 본격적으로 출발하면 당내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라며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위한 비전을 가감 없이 보여드리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이 토론회에서 실제 '한 방'을 보여줄 때 까지는 '자질·준비 부족' 논란에 두고두고 시달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