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 통장 보면 '세전 월급' 실감 안 나던데… 이유 있었네

입력
2021.08.1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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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들에게 월급날만큼 기분 좋은 날도 드물다. 하지만 회사에선 연봉을 올렸다는 데, 통장에 입금된 금액이 상승분보다 적게 느껴진 경험 또한 봉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갖고 있을 터다. 기대감만큼이나 상실감이 컸기에 새겨진 이런 기억 이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과거 실수령 임금이 ‘세전(稅前)’ 임금에서 차지한 비중보다, 요즘 실수령 비중이 적다는 사실이 수치로 입증되면서다. '임금이 올라갔다 한들 더 많은 돈을 여기저기서 떼어 가는 것 같더라'라고 떠돌았던 직장인들의 ‘슬픈 예감’이 사실이었던 셈이다.

17일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300인 이상 기업의 월평균임금 통계를 분석한 결과, 기업이 지급한 임금에서 공제된 근로소득세와 사회보험료가 2010년 92만 원에서 지난해 140만 원으로 52.1% 늘었다.

2010년과 2020년의 300인 이상 기업 월평균 임금을 예로 들면 쉽다. 한경연에 의하면 2010년 기업이 세전 임금 449만원을 지급했을 때, 근로자는 사회보험료 67만 원과 근로소득세 25만 원을 합한 92만 원을 제외한 357만 원을 수령했다. 10년이 흐른 2020년엔 근로자 월급이 올라 기업은 세전 임금 575만 원을 주게 됐는데, 실제 근로자 통장에 찍히는 금액은 사회보험료 98만 원과 근로소득세 42만 원까지 총 140만 원을 뺀 435만 원이다.

2010년엔 월급의 20.5%가 공제돼 통장에 입금됐던 실수령 월급이 10년이 흐른 2020년엔 24.3%가 공제돼 들어온 것이다. 최근 10년간 근로소득세와 사회보험료 상승 폭이 임금 상승 폭보다 커지면서,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액수와 근로자가 실제로 받는 금액의 격차가 커졌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실제 한경연이 발표한 공제 항목 수치를 살펴보면, 월급이 가장 적게 올랐다. 근로자 실수령 월급은 2010년 357만 원에서 2020년 435만 원으로 연평균 2.0%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근로소득세는 5.3% 늘었고 국민연금·건강·고용보험료는 각각 연평균 2.4%, 5.0%, 7.2%씩 뛰었다.

국민연금 요율은 10년간 임금의 9%로 변동 없이 유지됐지만, 임금 인상에 따라 납입금이 증가해 2010년 37만 원에서 2020년 47만 원으로 연평균 2.4% 늘었다. 건강보험료(장기요양보험료 포함)는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지출 증가, 보장 범위 확대, 의료수가 인상 영향으로 요율이 오른 데다, 임금 인상에 따른 납입금 증가가 더해지면서 2010년 24만 원에서 2020년 39만 원으로 연평균 5.0% 늘었다. 고용보험료 또한 2010년 6만 원에서 2020년 12만 원으로 연평균 7.2% 늘었는데, 요율과 임금 인상에 따른 납입금 증가 때문이라고 한경연은 분석했다.

한경연은 “물가와 연동되지 않는 근로소득세 구조도 근로자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소비자물가지수 추이를 봤을 때 물가상승률은 2010년 소비자물가지수 81에서 2020년 105로 연평균 1.5%씩 증가했고, 근로소득세는 임금 인상에 따라 부담이 늘어 2010년 25만 원에서 2020년 42만 원으로 연평균 5.3%씩 증가했다. 근로자가 물가 인상과 근로소득세 인상 부담을 모두 떠안는 셈이다.

한경연에선 근로자의 안정적인 소득 증대를 위해선 미국과 영국, 호주, 캐나다 등에서 시행 중인 소득세물가연동제 도입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중간에서 공제하는 근로소득세 및 사회보험료 부담이 더 크게 늘다 보니 근로자의 체감소득이 별로 늘지 않았다”며 “물가연동세제와 사회보험료 개혁을 통해 기업 부담을 줄이고, 근로자 실소득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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