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애틀공항에서 배우는 대구신공항의 미래

입력
2021.08.14 10:00

바야흐로 세계는 도시 간 경쟁 시대다. 미국 북서부에 위치한 워싱턴 주는 인구 760만 명이 사는, 미국 51개 주 가운데 13번째에 불과한 작은 주다. 3억2,000만 미국 인구 가운데 2.3%만이 산다. 이곳을 대표하는 도시는 시애틀(Seattle)이다. 시애틀을 감싸고 있는 메트로 권역을 모두 포함한 인구는 400만 명으로, 미국에서 15번째 도시다. 부산 인구보다 조금 더 많은 시애틀은 우리나라로 치면 동해안 강릉 같은 규모와 위치의 도시다. 비행기가 아니면 뉴욕, 보스턴 같은 미국의 중심부에 도달하기 어렵고, 같은 태평안 연안에 위치한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 같은 대도시와는 거리가 1,100㎞, 1,700㎞나 떨어진 오지다. 뉴욕까지 비행기로 5시간이나 걸리는 오지 중의 오지인 시애틀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보잉, 스타벅스 등 세계적 기업들을 품고 있는 만만치 않은 도시다. 이 작은 도시를 세계적 IT 기반 도시, 비즈니스 도시, 항공 도시, 그리고 문화와 커피의 도시로 만든 일등공신은 시애틀국제공항(Seattle–Tacoma International Airport)이다.

시애틀공항은 10㎢의 광활한 부지에 한 개의 대형 활주로(3.5㎞)와 두 개의 중형 활주로(2.9㎞, 2.6㎞)를 구축하고 연간 5,000만 명(2019년)의 이용 승객을 실어나르는 미국 북서부 최대의 허브공항이다. 이곳에 취항하는 34개의 항공사가 국내선 91노선과 국제선 28노선으로 촘촘히 연결된다. 2020년 시애틀-인천 노선을 이용한 승객은 42만 명으로, 시애틀공항이 운영하는 두 번째로 승객이 많은 국제선이다. 시애틀공항 덕택에 미국 시민 누구나, 혹은 세계 각국 어디서나 시애틀을 오지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시애틀의 저력은 시애틀공항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애틀공항 덕택에 이곳에 둥지를 튼 아마존을 위시한 수많은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바야흐로 세계는 도시 간 경쟁 시대다. 시애틀은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 샌디에고, 포틀랜드와 더불어 태평양 연안의 패권을 두고 경쟁 중이다. 이들 태평양 연안 도시들은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도 유명하다(2020년 샌프란시코 7위, 포틀랜드 8위, 시애틀 9위, 샌디에고 36위). 이들 도시는 하나같이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것을 기반으로 지역의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또 세계를 지배한다. 짙은 침엽수림과 커피의 고장 시애틀에서 스타벅스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같은 IT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자연 친화 도시를 표방하는 포틀랜드는 나이키와 아디다스 같은 세계적 아웃도어 기업을 품고 있다. 강렬한 캘리포니아의 햇볕과 자유와 낭만이 충만한 도시 샌프란시스코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세계의 두뇌들을 무섭게 끌어들여 IT 기업의 수도를 자임한다.

한국, 수도권 집중이라는 매우 기형적인 나라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매우 기형적인 나라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인구 절반 이상이 거주하고 경제가 집중하는 상황에서, 비수도권 도시나 지역들은 서울과 수도권의 종속 변수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 중심지인 워싱턴 DC는 인구 69만 명의 중규모 도시다. 미국의 경제 수도는 뉴욕이고, 교육 수도는 보스턴이며, IT 수도는 샌프란시스코다. 이밖에 중북부의 중심 도시인 시카고나 디트로이트, 남부의 애틀란타와 오스틴, 그리고 서부의 로스엔젤레스, 샌디에고 등은 모두 나름의 색채를 자랑하는 도시들이다.

그에 비해 한국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과 비수도권이라는 두 개의 영역만이 존재한다. 수도권은 인구, 교육, 경제, 기술, 문화의 수도이고, 비수도권은 변방이다. 비수도권 주민들은 기회만 있으면 수도권으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수도권은 1류, 비수도권은 3,4류이고, 수도권 주민이 1류 주민인 반면, 비수도권 주민들은 희망이 거세된 불가촉천민들이기 때문이다. 수도권에는 인천공항, 김포공항, 청주공항 등 세 개의 주요 공항이 위치하고, KTX, SRT를 비롯한 고속열차, 경부선·전라선을 비롯한 철도, GTX(수도권 광역 급행철도)와 지하철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교통 요충지다. 전국으로 뻗어 나가는 주요 도로 대부분이 통과하는 교통 결절점이기도 하다. 인구와 경제, 그리고 교통이 집중함에 따라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수도권 집중도가 이렇게 높은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2020년 30-50클럽 가입 7개국(미국·독일·영국·일본·프랑스·이탈리아·한국) 가운데, GDP(국내총생산) 기준 수도집중도는 한국이 51.8%로 가장 높고, 미국이 0.7%로 가장 낮다. 역사적·정치적으로 중앙집권 전통이 강한 한국, 일본, 프랑스의 집중도가 높은 반면, 지방분권의 전통이 강한 영국, 이탈리아, 독일, 미국이 낮다. 동아시아권 국가로 중앙집권적 전통이 강한 일본의 수도 집중도는 33.1%로, 7개국 가운데 2위다. 그렇지만 한국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수도 및 대도시 집중으로 인한 농촌부 지역의 소멸 문제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은 인구, 교육, 문화, 경제, 교통, 주거 등등 모든 지표에서 수도권 집중도가 지구상의 어떤 나라보다 높은 매우 특이한 나라다. 이러한 수월성을 기반으로 서울은 온 나라의 소중한 자원들을 사정없이 끌어들이는 블랙홀이다. 2015년 GDP 기준 48.1% 수준이었던 수도권 집중은 2016년에는 48.4%, 2017년에는 49.1%, 2018년에는 51.8%로 증가하고 있다. 수도권으로의 질주가 계속되는 한 지방의 침체, 이탈, 소멸이라는 위기는 불을 보듯 뻔하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지방 대학들이 무너진다"는 시중의 우스개 소리는 지방 소멸을 상징하는 암울한 레토릭이다.

우리가 꿈꾸는 나라, 보다 철저한 분권이 보장되는 나라

여기에서 우리는 묻는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한국의 길인가, 아니면 미국의 길인가? 일본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수도권 집중은 지방의 소멸을 가져와, 농촌부가 사라지고 수도권만이 남는 매우 기형적 국가가 될 것이다. 미국은 수도권 GDP가 0.7% 수준으로 아예 없다시피 한 나라이다. 이런 현상은 각주별 독립적 지위가 분명하고 주별, 도시별 경쟁이 활발한 상황을 반영한다. 경제 수도 뉴욕, 교육 수도 보스턴, IT 수도 샌프란시스코 등, 확실한 지방분권과 도시 간 경쟁이 다양한 분야의 많은 수도를 만들어냈고, 도시의 특수성과 독자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했다. 그렇게 권력이 분산되고 기능이 나뉜 채 안으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그 에너지가 바깥으로 발산하여, 세계를 선도하는 초강대국 미국이 탄생했다.

여기서 우리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에 대한 전통 이외에 어떤 다른 대안도 가져보지 못했던 한국 사회에 근본적 의문을 던져야 한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과 정부를 가진 한국 사회가 선진국인가, 철저한 지방분권과 주별·도시별 경쟁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미국이 선진국인가? 지방이 소멸하고 수도권만이 존재하는 사회는 분명 기형적이다. 이런 모델은 세계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여기서 보다 강력한 지방분권에 대한 요구가 분출된다. 도 단위 지방정부가 재정권, 교육권, 문화권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중앙정부는 이를 지원하고 조정하는 역할로 물러서야 한다. 지방정부는 도별·시별 경쟁을 통해 문화적·경제적 발전과 성장을 동시에 견인해야 한다. 보다 철저한 지방분권 시대에서 중앙 정부와 수도권은 지방정부와 경쟁하는 또 다른 지방에 다름 아니다.

지방정부 간 경쟁의 주체는 도시다. 인구가 몰려들고 경제와 교육이 집중하는 도시가 제 나름의 특성과 라이프스타일에 기반하여 내부적으로 혁신하고 경쟁하며, 그 에너지를 세계로 확산해야 한다. 자연 친화 도시 포틀랜드가 아웃도어 산업을 선도하고, 커피의 도시 시애틀이 세계 커피시장을 지배하는 것처럼.

금년 2월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의 제정을 계기로 이제 대구·경북은 동남권 지역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대구경북을 단일권으로 하는 경제 권역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부산·경남과 경쟁하고, 또 수도권과도 다퉈야 한다. 그 기초가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이다. 그 전제는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이 한반도 동남권을 대표하는 허브공항이자, 동아시아를 선도하는 관문 공항이 되는 것이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기껏해야 '지방공항' 수준에서 검토했던 애초의 논의에서 벗어나, 동남권 '중규모' 신공항 구축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때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이 인천공항을 모델로 하여 운영 경비를 낮춰 세계 유수의 항공사를 끌어들이고, 시애틀공항을 모델로 하여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들을 품을 수 있다면, 대구경북은 희미한 희망의 끝자락을 마지막으로 잡을 수 있다. 분발하라, 대구경북!



김성우 대구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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