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문을 닫는 가게들이 늘면서 '폐업 컨설팅'이 버젓한 사업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신규 자영업자의 사업자등록 등을 돕던 '창업 컨설턴트'가 '폐업 코디네이터'로 속속 변신하고 있다. 중고 주방용품 매입상들도 앞다퉈 '폐업 전문'을 표방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계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12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창업 컨설팅 업계에선 요즘 폐업 코디네이터로 불리는 '사업정리 컨설팅'이 또 하나의 사업 영역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폐업 컨설팅 대가로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금을 받는다. 중소기업벤처부와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운영하는 '희망리턴패키지' 사업과 서울시가 진행하는 사업정리 컨설팅 사업이 지원처다. 이들 기관은 폐업 당사자에겐 임대료 최대 3개월치 또는 점포 철거비 최대 200만 원을, 컨설턴트에겐 건당 25만~30만 원을 각각 지원한다.
대구에서 창업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김형균 이플러스창업경영연구소장은 "최근 2, 3년 새 창업 수요가 급감했다"며 "요즘은 정부 폐업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폐업 컨설팅을 같이 해야 회사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업정리 컨설턴트' 명함으로 활동 중인 A씨는 "과거 점포 개발 업무를 했으나, 작년부터는 폐업 컨설팅을 주로 하고 있다"며 "최근 맡은 상담의 대부분은 외식업 폐업"이라고 말했다.
폐업 컨설팅 시장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중기부가 지원한 사업정리 컨설팅 건수는 2019년 8,175건에서 지난해 1만681건으로 30% 이상 늘었다. 컨설팅 지원금 규모로 따지면 지난해 기준 32억 원짜리 시장인 셈이다. 중기부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2개월간 지원이 결정된 것만 4,453건에 달한다. 서울시는 1~7월 783개 업체에 사업정리 컨설팅을 제공, 벌써 지난해 연간 실적(754건)을 넘어섰다.
중고 주방용품 매입상들도 '폐업 전문'을 앞세우며 사업 방향을 틀고 있다. 기존엔 매입품을 적정가에 사줄 신규 자영업자를 찾는 데 치중했다면, 지금은 폐업하려는 매장을 선점해 값비싼 주방용품을 싼값에 사들이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창업은 줄고 폐업은 급증하는 현실에 맞춘 수익 전략인 셈이다.
한 매입상은 "예전엔 연식이 오래돼도 상태만 좋으면 물건을 매입했지만, 이제는 3, 4년 이내 '신품'급만 가려 매입한다"고 달라진 상황을 설명했다. 25년째 주방가구를 판매해온 서윤석(56)씨는 "과거엔 폐업 가게를 알음알음 찾아 물건을 매입했다면, 요즘은 폐업하는 가게를 빨리 찾아 싼 가격에 구입한 뒤 마진을 붙여 다시 판매상에게 넘기는 '나까마'(중간상을 뜻하는 업계 은어)들이 급증했다"며 "폐업한다고 해서 가보면 서너 명은 먼저 와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지만, 이들 업계에선 "신사업 개척이라기보단 살아남기 위한 궁여지책에 가깝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폐업전문 컨설턴트는 "창업 수요가 워낙 적다 보니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폐업 컨설팅까지 하게 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중고 주방용품 매입상들은 잔뜩 사들인 물량을 팔 데가 없어 곤란을 겪는다.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서 20년 넘게 주방기구를 판매해온 이화종씨는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들어오는 물량이 두 배로 늘었다"면서 "재고가 쌓이다 보니 4, 5년 이상된 제품들은 고철 처리를 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가게 문을 닫는 이들을 상대로 돈 벌기가 편치도 않다. 영등포에서 중고 주방용품점을 운영하는 60대 박모씨는 "매입하러 가면 사장님들이 물건 빼는 걸 지켜보면서 하염없이 울기도 한다"면서 "그럴 땐 자리를 잠깐 피해주거나 '잠깐 어디 다녀오시면 정리해 놓겠다'고 말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