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톱박스 생산에 필수적인 자사 특허기술을 담보로 국내 제조사에 ‘갑질’을 저지른 미국 영상·음향기술 회사 '돌비'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게 됐다.
공정위는 12일 국내 셋톱박스 제조사인 가온미디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제품생산에 필수적인 표준필수특허의 기술사용 승인절차를 중단, 미지급 특허 실시료(로열티) 갈등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감사결과에 따르도록 종용한 돌비에게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2억7,000만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7년 9월 돌비는 가온미디어에 대한 실시료 감사에 착수했다. 자사 기술이 들어간 칩셋이 쓰인 셋톱박스를 만들고 있는 만큼 실시료를 제대로 내고 있는지 확인에 나선 것이다. 돌비는 디지털 오디오 코딩 기술 표준인 AC-3 등에 대한 특허권을 보유한 표준필수특허권자로, 국내 지상파 방송은 돌비의 AC-3를 표준으로 채택하고 있다. 때문에 셋톱박스 등 국내 모든 방송 관련 최종 제품엔 돌비의 특허기술이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미지급 실시료 산정 규모를 놓고 갈등이 일자, 돌비는 자신의 주장에 따르도록 하기 위해 2018년 6월부터 가온미디어의 BP3 플랫폼을 통한 표준필수특허 기술사용 승인을 거절했다. BP3 플랫폼은 셋톱박스용 칩셋 1위 사업자인 브로드컴이 만든 유통 플랫폼으로, 돌비의 기술사용 승인이 있어야 브로드컴이 만든 칩셋 내 돌비 기술이 작동한다.
앞서 2016년 11월 가온미디어는 미국 유선방송사업자 티모바일과 셋톱박스 제품 개발에 나서면서 돌비 특허기술이 담긴 브로드컴의 신규 칩셋을 탑재하기로 결정했다. 공정위가 확보한 이메일에 따르면 돌비는 가온미디어에 “(로열티)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 추가적인 승인은 없을 것”이라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합의를 종용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티모바일과의 신규 셋톱박스 개발·생산에 차질을 입은 가온미디어는 2018년 9월 20일 돌비의 요구안대로 감사 결과에 합의, 미지급 로열티를 주기로 했다. 그제야 돌비는 가온미디어에 BP3 플랫폼을 통한 기술사용을 승인해줬다.
공정위는 가온미디어가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이미 보장받은 표준필수특허 사용권을 돌비가 부당하게 제약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돌비가 국제표준화기구와 약속한 ‘프랜드(FRAND) 확약’에도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프랜드 확약은 표준필수특허 보유자가 특허 이용자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하겠단 약속이다.
공정위는 “특허권자가 자신의 지위를 남용해 공정거래 질서를 저해하는 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