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1차 주민토론회 무산'. 2017년 우연히 본 짧은 기사가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다니면서 졸업작품을 준비하고 있던 김정인(39) 감독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김 감독은 2차 주민토론회 현장을 찾았다가 뜻밖의 '초현실적' 경험을 했다. "학교를 세우게 해달라"며 무릎 꿇은 발달장애인 부모와 그들을 둘러싸고 "쇼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주민들. 그가 특수학교 설립의 험난한 여정을 따라가기로 결심한 계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특수학교 서진학교는 지난해 3월 서울 강서구에 문을 열었고, 그 과정을 담은 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도 지난 5월 개봉했다. 그러나 개교에 반대했던 주민 A씨가 최근 자신의 출연 분량을 삭제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하면서, 김 감독은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6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김 감독은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닌 만큼 이에 대한 법원 판단을 받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서진학교 부지에 있었던 공진초등학교의 역사부터 주목해달라고 말한다. 재학생 70%가량이 인근 임대주택에 사는 저소득층 자녀였던 공진초는 2011년 학생 수 부족으로 사실상 폐교됐다. 임대주택에 살지 않는 학부모들이 공진초를 피해 다른 학군으로 옮겨가면서 학생들이 대폭 줄어든 결과였다.
김 감독은 이를 "명백한 주거 정책의 실패"라고 평가했다. "서울 개발정책이 강남권에 쏠리는 동안 강서구엔 저소득층이 주로 입주하는 영구임대주택이 대거 들어섰어요. 일종의 취약계층 수용지가 된 거고, 지역은 기피 학군이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피해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김 감독은 지적한다.
공진초 폐교는 임대주택 거주자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영화에 등장한 공진초 학부모는 강서구에 또다시 취약계층 시설이 들어온다고 불만스러워하면서도, 주민들을 향해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 맞은 격"이라고 꼬집는다. 김 감독은 "공진초 학부모들은 특수학교 설립 반대 운동에 끝내 동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학교를 담보로 주민들의 피해의식을 자극한 정치인들이 문제였다고 판단했다. 당시 강서구를 지역구로 둔 김성태 전 의원은 학교용 부지에 한방병원을 세우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내걸었고, 유명 정치인의 약속에 주민들은 장밋빛 기대를 품었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A씨 역시 영화에서 "허준 테마 거리가 있고 허준 박물관이 있고 한의사 협회가 있고, 이런 곳에 (한방병원과 특수학교 설립 중) 어느 것이 효율성이 있느냐"라고 말한다.
김 감독은 "강서구에 주민 모두가 어우러져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이 충분히 지어졌어야 한다"면서 "다만 학교만큼은 경제적 거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결정권자들의 원칙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김 감독은 전국 취약계층 시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최근 경기 가평군의 작은 장애인 시설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동네를 조금만 돌아다녀도 주민들이 민원을 넣는 바람에 장애인들이 고립되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장애인 시설이 너무 낡아 이전해야 하는데 주민 반대로 계속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학교 가는 길'이 이런 문제를 활발히 논의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학교 가는 길'은 '마로와 마로의 친구들에게'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김 감독은 "영화 전체가 딸과 그 친구들에게 보내는 영상편지이자, 잘못된 사회구조를 만든 기성세대로서의 반성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이 제작한 모든 영화의 첫 관객이라는 딸은 '학교 가는 길'에 대해 "세상을 더 좋게 만들 것 같다"는 감상평을 내놨다고 한다. 김 감독은 "감독과 영화는 잊히더라도, 특수학교를 포함한 취약계층 필수 시설에 대한 관심은 이번 일을 계기로 쭉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