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낮 12시 45분쯤 전두환(90) 전 대통령이 광주지방법원에 도착했다. 5·18 당사자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피고인으로 항소심에 출석한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법원 후문으로 입장해 차에서 내릴 때부터 경호원의 부축을 받았다. 이날 오전 8시 25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출발할 때 혼자 걸어나와 손을 한 번 흔들고 차량에 탑승했던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그는 계단을 올라 법원 건물에 들어서는 동안 취재진이 "발포 명령을 부인하느냐" "광주시민과 유족에게 사과할 마음이 없느냐" 등 질문을 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법정동 2층 내부 증인지원실에서 대기하다가 법정에 출석했다. 부인 이순자씨는 내내 남편 뒤를 따랐다.
전 전 대통령은 개정 직후 재판부의 신원 확인 질문에 부인 이씨의 도움을 받아 답변했고, 지난해 선고공판에 출석했을 때처럼 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재판이 시작된 지 25분 만에 호흡 불편을 호소하면서 퇴정했다.
전 전 대통령이 관련 사건 항소심에 출석한 건 처음이다. 그는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1심 재판 기간 동안, 2019년 3월과 지난해 4월 두 차례 인정신문과 지난해 11월 말 선고공판에만 출석했다. 항소심이 시작된 후엔 재판에 나오지 않다가 재판부가 불이익을 경고하자 이날 출석했다.
경찰은 전 전 대통령 도착을 앞두고 5·18 단체들과 시민들이 법원에 집결하자, 법원 후문과 주변에 펜스를 설치하고 경비를 강화했다. 광주 외곽에서 도심으로 진입하는 자동차전용도로 곳곳에도 경비 인력을 배치했다. 다만 단체들이 사전에 차분한 대응을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에, 전 전 대통령이 법원에 도착했을 때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5·18기념재단과 5·18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는 전 전 대통령 도착 직후 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과 광주시민은 물론,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지 못한 희생자와 가족들이 재판을 주시하고 있다"며 "전씨에게 엄정하고 신속하게 법의 심판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체들은 "전씨가 여전히 반성 없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만큼 방어권을 과도하게 보장해서는 안 된다"면서 "재판부는 일반 국민과 동일한 기준으로 전씨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단체들은 회견 직후 전 전 대통령의 엄벌을 촉구하는 침묵 시위를 진행했다. 시위자들이 든 팻말과 현수막에는 '29만 원 할아버지, 누가 거짓말쟁이?'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학살자' '전두환 "이거 왜 이래"' 등의 문구가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