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무용수들은 각자 흩어져 있다. 누군가는 한가운데서 춤추고, 또 다른 이들은 가장자리를 맴돈다. 안무도 각양각색. '현대무용'스러운 몸짓을 하는 사람도, 갑자기 브레이크댄스를 선보이는 춤꾼도 있다. 역동적인 춤사위치곤 음악도 이질적인데 피리와 장구소리 등이 어우러진 현대 국악이 흘러나온다.
현대무용과 스트리트댄스, 국악이 결합된 이 춤은 국립현대무용단이 20~22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리는 공연 '힙합(HIP合)' 중에서 '브레이킹(BreAking)'이라는 작품이다. 현대무용단 리케이댄스의 이경은 예술감독이 안무를 만들었다. 최근 예술의전당 리허설 현장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이 안무가는 "현대무용과 스트리트댄스, 국악의 맛을 각각 살려 색다른 춤을 소개하는 한편, 세상을 향한 새로운 시각에 대한 고민도 담았다"고 설명했다.
작품 제목에 안무가가 의도한 메시지가 숨겨 있다. 'B급'들이 만드는 'A급' 세상을 지향하는 춤이다. 주류와 비주류 등 사회가 규정한 경계를 깨부수는 몸짓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브레이킹'에는 다양한 경계가 등장한다. 현대무용과 길거리춤, 남성과 여성, 삶과 죽음, 무대와 객석 등의 구분이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는 "마치 유리천장처럼 존재하는" 벽이 있다. 공연에서는 커다란 아크릴 판이 상징적으로 등장한다.
작품에는 리케이댄스 소속 무용수 5명과 스트리트댄스팀 '업타운패밀리'의 멤버 3명이 참여한다. 이들은 저마다의 리듬으로 주체적인 춤을 춘다. 획일적인 군무가 아닌 개성적인 동작의 모음이다. 이 안무가는 "우리 사회는 시스템이 정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이들을 B급, C급으로 규정하는데, 이런 세태에 순응하기보다는 인식을 바꿔서 자신만의 가능성을 찾아 나서면 좋겠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관객의 눈은 공연 내내 바쁘게 움직이게 된다. 무대 중앙이나 특정 무용수에만 시선을 집중하기에는 다른 이들의 춤이 무척이나 이채롭기 때문이다.
무용수 의상도 의미가 있다. 현대무용 특유의 관념적인 옷이 아니라 관객들이 "나도 집에 저 옷 있는데"라며 친숙함을 느낄 법한 일상복이 등장한다. 객석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설정이면서 정장과 평상복, 스포츠웨어 등 다양한 의복 속성을 통해 사회적 경계를 표현했다.
국악 기반 록밴드 잠비나이 소속 뮤지션 이일우가 공연 음악을 만들었다. 피리와 가야금, 장구, 꽹과리 등 국악기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연주될 예정이다. 이 안무가는 "국악은 우주를 연주하는 음악인데 그 공간감이 현대무용과도 잘 어울린다"면서 "국악 연주자들은 음악과 춤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을 향해 다가갈 것"이라고 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11일까지 온라인 상영관 '댄스 온 에어(kncdc-theater.kr)'에서 이 안무가의 작품 방향을 미리 엿볼 수 있는 댄스필름을 공개한다.
한편 '힙합'에서는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예술감독인 김보람 안무가의 '춤이나 춤이나(Nothing to)'와 창작그룹 무버의 김설진 안무가가 만든 '등장인물(MOVER)'도 함께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