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례없는 글로벌 해운물류 호황이 창립 후 45년간 무파업 행진을 이어온 국내 최대 해운선사 HMM(옛 현대상선)에 갈등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지난 1분기 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원을 돌파한 회사 측에 노조가 연봉 25% 인상을 요구하고 나서면서다. 하지만 정부의 공적 자금까지 투입된 상황에서 노조의 요구는 과도하다는 게 회사 측 입장이다. 현재 노사 간 분위기를 고려하면 국내 최대 해운선사의 파업도 배제할 순 없는 형편이어서 ‘수출 물류대란’까지 우려되고 있다.
김진만 HMM 육상노조 위원장은 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8년 동안 임금이 동결된 탓에 국내 중소 선사들 수준으로라도 임금을 회복하려면 올해 연봉 25% 인상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사측에서 최근 실적 상승과 관련해 수고했다고 격려금을 주겠다고 하는데 이건 노조원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육상노조는 지난달 28일 4차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을 사측과 진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이후 대의원 회의를 열고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중노위에 쟁의조정을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중노위에서 조정 중지를 내리면 파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번 임단협의 쟁점은 연봉 25% 인상을 담은 노조의 요구안이다. HMM은 지난해까지 암흑기를 보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머스크, MSC 등 글로벌 메이저 선사들이 인수합병 등을 통한 규모의 경제로 가격경쟁력을 키워 나갔지만 HMM은 이런 추세를 쫓아가지 못하면서 2011년부터 적자의 늪에 빠졌다. 이에 따라 HMM은 지난해 1분기까지 20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이 과정에서 직원들의 연봉도 2012년부터 2019년까지 8년간 동결됐다.
사측은 난감한 처지다. 현재 흑자 기록을 이어가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에 따른 물동량 증가로 일시적 현상에 그칠 수 있고, 지난해 1분기까지 20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막대한 공적 자금도 투입된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6년 8월 한진해운이 파산하자, HMM이라도 회생시키기 위해 2조5,000억 원에 달하는 공적 자금을 쏟아 부었다. HMM은 이후 재정 충당을 위해 3조3,000억 원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했고, 대형 컨테이너선 추가 발주 등에 2조 원 가까운 자금을 투자해 부채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측에선 사측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현재 HMM은 사내 유보금으로 3조 원 넘는 자금을 쌓아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이라도 정부의 공적 자금 상환이 가능하다는 게 노조 측 판단이다. 여기에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빌려준 자금에 대해서 연 3%에 달하는 금리로 이자를 갚아왔다. 공적 자금을 받았지만 정부로부터 크게 혜택을 받은 건 없다는 게 노조 측의 생각이다. 특히 HMM의 흑자 경신은 최근 세계 3대 해운동맹인 '디 얼라이언스' 가입 등에 힘입어 가격경쟁력을 갖추면서 이뤄진 것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은 실적 개선에 영향을 줬지만 주요한 원인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HMM은 1976년 창립한 이래 파업을 단행한 적이 없다. 해운업이 국가기간산업인 만큼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였다. 하지만 올해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특히 HMM 해원노조(선원 노조)의 경우 육상노조와 별도로 임단협을 진행 중이다. 3일 예정된 3차 교섭과 이후 4차 교섭까지 진전이 없다면 이들 역시 중노위 조정 신청에 나설 예정이다. 노조 관계자는 “글로벌 대형 선사들에서 HMM 해원노조를 대상으로 인력 채용에 나서면서 연봉을 2.5배 정도 높은 수준으로 제시하고 있다"며 "사측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대규모 인력 이탈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