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제시한 치안 확충 계획이 역풍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다. 공약했던 경찰 충원은 없이, 되레 노동 강도를 증가시킨다는 반발에 부딪혔다. 게다가 급여까지 동결된 경찰은 내무장관 불신임안을 가결하는 등 총력전에 나섰다. 야당도 경찰의 손을 들어주면서 존슨 총리의 새 정책은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기도 전에 암초를 만나게 된 모습이다.
2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조치 해제 첫날을 기점으로 이른바 ‘구타 범죄 계획’이라는 새 치안 정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가디언은 존슨 정부의 새 정책에 △수색 제한 완화 △출소 후 범죄자에 대한 모니터링 확대 △음주 관련 범죄자에 알코올 측정 태그 부착 △보호관찰 기간 중 거리 청소 등 무급 사회활동이 포함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존슨 총리는 25일 보수 성향 일간 데일리익스프레스의 일요판인 선데이익스프레스 기고문을 통해 “우리는 반(反)사회적 행동을 포함한 모든 유형의 범죄를 처리하고자 한다”며 “당신이 어디에 거주하든, 당신의 전화를 받아 줄 전담 경찰관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어 “진정한 번영을 위해선 범죄부터 물리쳐야 한다”며 “정부가 이런 계획을 갖고 있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자찬했다.
계획은 원대하지만 당장 일선에 투입되는 경찰 측은 “실행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경찰관 권익 보호 조직인 경시청연합회(MPF)의 켄 마시 대표는 “전담 경찰관이 교대 근무 또는 휴가 중일 때 더 많은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며 “경찰 조직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존슨 총리가 우리를 조롱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경찰관 급여도 동결한다는 보수당의 계획은 경찰의 불만에 기름을 붓고 있다. 프리티 파텔 영국 내무장관은 지난 21일 연 2만4,000파운드(약 3,817만 원) 이상을 지급받는 경찰관은 연봉 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4%대로 예상되는 올해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때 사실상 급여를 삭감한다는 이야기다. 잉글랜드·웨일즈 경찰연맹(PFEW)은 곧바로 파텔 장관 불신임안을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경찰 조직이 내무장관 불신임안을 가결한 건 2007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경찰이 정부에 잇따라 반기를 든 이유는 보수당이 경찰에 대한 지원 축소에 그치지 않고, 되레 더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데 있다. 2010년 이후 영국 전역에선 최소 667곳의 경찰 지구대가 폐쇄됐다. 또 2010~2018년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만 경찰 인력 2만1,732명이 줄어들었다. 전체의 15%에 이른다. 지난 2019년 존슨 총리가 공약했던 ‘경찰 2만 명 증원’은 이미 잊힌 지 오래다.
야당도 경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존슨 총리의 전담 경찰 계획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속임수”라고 비난했다. 닉 토머스시먼즈 그림자내각 내무장관은 “정부의 위선이 끝도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급여 인상도 없는 상황에서 경찰이 (파텔) 내무장관을 신뢰하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