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뮤지컬 대신 예매해 드려요"… 관객 울리는 '댈티'

입력
2021.07.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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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티케팅 거래 늘어나며 사기 등 피해 사례 속출

'손 느리고 시간 안 되시는 분 대리 티케팅해드립니다. DM(Direct Message·쪽지) 주세요! 수고비 단가는 조절 가능해요.'

공연계가 '댈티'로 불리는 대리 티케팅 거래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리 티케팅은 구매자가 예매 대행 업체나 개인에게 예매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넘기고, 소정의 수고비를 얹어 티켓을 넘겨받는 구매 방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띄어앉기' 적용으로 공연장마다 좌석 수가 제한되면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공연 티켓을 구하기가 이전보다 어려워졌다. 이에 '댈티'가 성행하면서 돈만 챙겨 가는 '먹튀'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정상적 티켓 구매자들의 관람권 침해 호소도 늘고 있다.

SNS 중심으로 젊은 세대 유혹

지난 5월 여고생 A(17)양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출연하는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의 티켓 예매일을 기다리던 중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대리 티케팅 광고글을 발견했다. 유명 배우나 아이돌이 출연하는 공연의 경우 티켓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된다는 사실을 알았던 A양은 고민 끝에 글을 올린 B에게 "표를 대신 예매해 달라"고 쪽지를 보냈다.

A양이 굳이 남에게 표 구매를 부탁한 이유는 예매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컴퓨터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사람이 손으로 하는 것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홈페이지에 접속, 표를 예매한다"는 대리 구매자들의 주장을 믿었기 때문이다.

A양은 자신이 원하는 좌석 등급(S석)과 예매 사이트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 계정 정보를 넘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겨 다른 아이디로 예약했고 남은 자리가 없어 부득이 VIP석을 끊었다"는 B의 연락을 받았다. A양은 VIP석 티켓 가격인 15만 원을 B의 계좌로 보냈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티켓은 감감무소식이었다. B는 연락은커녕 SNS 계정을 삭제한 채 잠적했다. A양이 경찰에 신고한 결과 B는 자신을 포함한 최소 8명에게 900여만 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A양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대리 티케팅 피해 사례다. 대리 티케팅 거래는 포털 사이트에서 전문 업체가 손쉽게 검색되고, 특히 SNS를 중심으로 음성적으로 광고되고 있다.

공연 애호가들은 티켓 가격 외에 통상 1만~5만 원에 이르는 수고비도 함께 지급해야 하는데도 울며 겨자먹기로 대리 티케팅을 이용하고 있다. 그만큼 인기 공연의 표를 구하기가 어려워서다.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5,000원~1만 원의 선입금을 요구하는 곳도 많다.

20대 공연애호가 이모씨는 "다른 예매자에게서 '플미(프리미엄·웃돈) 티켓'을 산다고 가정하면 12만~15만 원짜리 뮤지컬 티켓의 경우 최소 25만~30만 원은 줘야 하는데, 그보다는 5만 원쯤 수고비를 내고 '댈티'를 맡기는 편이 싸게 먹힌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일부 관객이 대리 티케팅을 통해 표를 구하다 보니, 정상적 절차로 티켓을 예매하려는 이들까지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법적 규제 애매하고 단속도 어려워

문제는 돈만 받고 '먹튀'를 하는 대리 티케팅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사업자등록을 한 대리 티케팅 업체도 별도 사무실 없이 가정집에서 운영되는 1인 기업이 많아 거래 신뢰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개인정보 도용에 따른 해킹 위험도 있다.

더욱이 현행법상 대리 티케팅을 직접 규제하는 법이 없고, 단속도 쉽지 않아 대리 티케팅은 공연계의 숙제로 떠올랐다.

대리 티케팅 업체들은 직접적 관계 법령이 없다는 이유로 "불법이 아니니 걱정 말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대리 티케팅을 공연법이 규정하는 '부정판매'로 보긴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관객이 피해를 볼 만한 행위라면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대리 티케팅 거래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를 처벌하려면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수밖에 없다. 한 변호사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댓글, 조회수 조작 등이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는 판례가 있기 때문에 공연시장에도 적용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경찰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악용해 대량의 표를 예매하고, 고가에 되파는 암표상을 업무방해 혐의로 단속, 처벌하고 있다. 하지만 A양 사례처럼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소량으로 이뤄지는 대리 티케팅의 경우 적발이 쉽지 않다. 게다가 대리 티케팅으로 산 표가 실제 관객 이름으로 예매될 경우 공연장에서 단속도 불가능하다.

공연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 관계자는 "특정 티켓이 도저히 사람이 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 내에 예매된 경우라면 조사 가능하다"면서도 "모든 공연을 들여다 보기란 불가능하고 설령 의심이 되는 예매 건도 당사자가 '직접 예매했다'고 우기면 강제로 취소할 수는 없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이규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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