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축복받은 작가들은 물리적 생이 다한 이후에도 계속 살아남는다.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만들어졌을 때 특히 그렇다. 새로운 작가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탄생하도록 산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제1회 박지리문학상과 제1회 문윤성SF문학상은 각각 2016년과 2000년 세상을 떠난 박지리, 문윤성 작가의 이름을 따 지난해 만들어진 문학상이다. 스물다섯 살에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데뷔한 박지리 작가는 6년간 7권의 책을 쏟아내며 천재 작가로 불렸지만 서른한 살에 세상을 등졌다. 박 작가를 세상에 알린 사계절출판사는 그의 이름을 따 문학상을 만들었다. 문윤성 작가는 1965년 대한민국 최초의 SF장편소설 ‘완전사회’를 발표했다. 아작출판사가 한국 SF문학의 발전을 위해 문 작가의 이름을 따 상을 제정했다.
최근 나란히 출간된 제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인 현호정 작가의 ‘단명소녀 투쟁기’와 제1회 문윤성SF문학상 수상작인 최의택 작가의 ‘슈뢰딩거의 아이들’은 그런 점에서 상의 취지에 가장 걸맞은 수상작이다. 상의 이름을 딴 작가의 유지를 계승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현호정 작가의 ‘단명소녀 투쟁기’는 수명을 관장하는 노인들에게 자기 명을 늘려 달라고 비는 연명담 ‘북두칠성과 단명소년’ 설화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소설이다. 기존 설화가 신에게 공물을 바쳐 목숨을 연장하는 소년의 이야기였다면, ‘단명소녀 투쟁기’는 오히려 죽음의 신과 정면으로 맞서 운명을 개척하는 소녀가 주인공이다.
대학 진학 여부를 알기 위해 입시전문 점쟁이를 찾아간 19세 수정은 대학 대신 난데없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예언을 받게 된다. 점쟁이는 “지평선에서부터 먹구름과 비가 솨아아 달려오는 모양으로 죽음도 달려온다”며 구름이 움직이는 속도보다 더 빨리 달리면 비를 맞지 않을 수 있듯, 죽음과 반대 방향으로 계속 움직인다면 죽음을 늦출 수 있다는 비책을 알려준다.
그렇게 해서 수정의 남쪽을 향한 질주가 시작된다. 현실세계에서 시작된 수정의 여정은 날개 달린 사자개의 등에 올라탐으로써 환상으로 이동한다. 그 과정에서 수정과 반대로 ‘죽기 위해’ 북쪽으로 향하는 이안과 만나게 되고 둘은 삶과 죽음이라는 각자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동행한다. 소설은 두 미성년이 어른들이 설계해놓은 생과 사의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대신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설계해 가는 방식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연명담을 창조한다.
최의택 작가의 ‘슈뢰딩거의 아이들’은 2050년대 대한민국에 생긴 세계 최초의 완전몰입형 중고등학교 ‘학당’이 배경이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직접 학교에 갈 필요 없이 자신만의 ‘아바타’를 통해 실제 학교와 똑같은 모습의 학교에 등교하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학교에서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비닐봉지와 같은 모습의 ‘유령’이 목격된다.
유령의 정체는 다름 아닌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다. 모든 아이들이 이 가상현실 학교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당을 비롯해 가상현실 자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이라는 미시 세계에서 확률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바로 ‘슈뢰딩거의 아이들’이다.
가상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실제 세상에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다. 소설은 미래 기술이 어떻게 약자와 소수자를 배제하는가에 대한 정교한 질문이다. 소설의 질문은 자연스럽게 현실의 질문으로 넘어온다. “그 애들은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건 더더욱 아니야. 우리가 보지 않고 있을 뿐이지”라는 문장은 2050년대가 아니라 2021년에도 필요하다.
최의택 작가는 선천성 근육위축증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휠체어 위에서 세상을 바라봤고 고등학교도 중도에 그만뒀다. ‘슈뢰딩거의 아이들’은 “어느 날 바깥에 돌아다니는 장애인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작가가 “장애인이 있거나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안 보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SF소설의 형태로 던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