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경북 포항지진을 촉발한 포항지열발전소 안정화 진단을 위해 7억 원을 들여 주문 제작한 심부시추공(심부) 지진계가 1년 넘게 창고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부 지진계 설치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와 포항시는 지난 5월 47억 원을 들여 지열발전 부지까지 매입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다.
20일 포항시 등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영국에서 제작해 국내로 들여온 심부 지진계는 북구 흥해읍 남송리 지열발전 창고에 보관돼 있다. 심부 지진계는 지상에서 4㎞ 아래 뚫려 있는 시추공(지열정)의 지진을 측정하는 장비다. 지상에 설치하는 지진계보다 더 자세한 지진 정보를 확보할 수 있어 포항 지진을 촉발한 지열발전 부지의 안정화 여부를 진단하기 위해 특별 주문 제작됐다.
국내로 반입해 지열발전 현장에 도착한 심부 지진계가 1년 넘게 설치되지 않은 이유는 과거 지열정을 뚫기 위해 동원됐던 거대한 시추기 때문이다. 시추기는 지열발전 주관사인 ㈜넥스지오가 정부 지원을 받아 96억 원에 구매했으나, 경영난을 겪으면서 회사 채권단인 신한캐피탈 등 5개 금융업체 소유가 됐다. 신한캐피탈 등은 자금 회수를 위해 시추기 매각에 나섰고, 지난해 2월 160만 달러(한화 19억2,000만 원)를 받고 인도네시아 업체에 팔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포항지진 피해주민들이 지진을 일으킨 현장을 훼손한다며 반발했고, 시추기를 가져가기 위해 온 기술자들이 철거를 하다가 중단하면서 심부 지진계가 들어가야 할 지열정이 막혔다. 당초 시추기와 지열정 입구는 5m 높이의 공간이 있었지만, 시추기가 내려앉으면서 지금은 50㎝ 정도로 좁아졌다.
산업부와 포항시는 지열발전 현장에 심부 지진계를 비롯한 지진관측설비를 속히 설치하겠다며 지난 5월 국비 33억 원과 시비 14억 원 등 47억 원에 부지 1만3,000㎡를 사들였다. 하지만 시추기로 지열정 입구가 막히는 바람에 많은 혈세를 쓰고도 시간만 보내고 있다.
포항시는 이달 말로 예정된 국무총리 소속 포항지진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 심부 지진계 설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포항시 지진특별지원단 관계자는 “철거에 반발한 주민들은 정부가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황에서 증거물인 시추기를 훼손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진상조사위원회가 지진 원인과 책임을 명확하게 밝혀낸다면 그때는 누구도 (철거를) 막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만재 포항 11·15 지진지열발전공동연구단 부단장은 “2006년 지열발전으로 규모3.4의 지진이 난 스위스 바젤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진을 측정해 공개하고 있는데 포항은 아직 지진계조차 설치하지 못하고 있으니 불안하고 답답하다”며 “정부의 진상규명이 속히 이뤄져 빠른 시일 내에 지열발전 부지의 안정화를 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