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국가선거심판원(JNE)이 급진 좌파 성향 신예 정치인 페드로 카스티요 자유페루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선언했다. 지난달 대선에서 카스티요와 맞붙었던 게이코 후지모리 민중권력당 후보도 공식 발표 직전, 당초의 불복 방침을 접고 선거 결과를 인정하겠다며 승복 의사를 공표했다. 선거 결과를 둘러싼 잡음은 잦아들 것으로 보이지만, 새 정부는 이제 갈라진 민심을 수습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호르헤 루이스 살라스 JNE 원장은 19일(현지시간) 화상으로 진행된 행사를 통해 “자유페루당이 유효투표의 50.126%인 883만6,380표를 얻어 49.874%를 득표한 민중권력당에 앞섰다. 카스티요를 대통령으로 선언한다”고 밝혔다고 페루 안디나통신이 보도했다. 지난달 6일 결선 투표 실시 40여 일 만에 공식적으로 카스티요의 대선 승리를 확정한 것이다. 그는 28일 취임 선서와 함께 대통령직에 오른다.
JNE의 이 같은 발표 이후, 카스티요 당선인은 수도 리마 당사 발코니에 나타나 페루인의 단결을 호소했다. 그는 “우리는 원한을 가져선 안 된다”며 “페루의 새 100년을 열어 나갈 단결을 촉구한다”고 인사를 전했다. 대선 경쟁자였던 후지모리 후보를 향해서도 “이 나라의 전진에 장애물을 만들지 말자”며 협력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후지모리 후보는 JNE의 공식 발표 직전, 성명을 통해 “헌법과 법률에 의거한 (대선) 결과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주의를 손상시키는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는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지만, 카스티요 당선인을 인정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은 유지했다. 후지모리 후보는 “카스티요의 불법적 (당선) 선언에 직면한 상황에서 비폭력으로 공산주의에 맞선 위대한 방어를 시작하자”고 지지자들에게 주문했다. 자신의 패배 원인이 ‘부정 선거’ 때문이라는 종전 입장을 되풀이하면서도, 대승적 차원에서 승복한다는 이미지를 심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후지모리 후보가 돌연 ‘패배 인정’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은 돈세탁 등 부패 혐의로 감옥행이 임박한 시점에서 새 정부에 보낸 ‘유화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후지모리는 2011년과 2016년 대선 출마 당시 브라질 대형건설사 오데브레시에서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으나, 선거를 앞두고 보석으로 풀려난 바 있다. 지난 3월 페루 특검은 △자금세탁 △조직범죄 △사법방해 △허위 행정신고 등 네 가지 혐의에 대해 징역 30년 10개월을 구형했는데, 만약 후지모리가 당선됐다면 재판도 중단될 예정이었다.
새 정부가 후지모리에 관대한 태도를 취할지는 불분명하다. 카스티요 당선인은 이날 연설에서 “페루 국민으로부터 한푼이라도 훔치는 걸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부패라는 국가의 커다란 악(惡)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후지모리 후보가 직면한 부패 혐의를 에둘러 꼬집은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