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17'은 전령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조지 맥케이 분)는 시체가 쌓인 서부전선을, 그리고 전쟁의 참혹함을 홀홀단신 가로지른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날이 밝기전에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지 못하면 동료 수천명의 목숨이 날아간다.
쏘고(레이저 런) 찌르고(펜싱) 말 타고(승마) 물 건너(수영) 목표지점으로 나아가는 전령. 근대5종은 그들의 서사가 녹아있는 스포츠다.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은 비인기 종목이지만 나름 한국 선수들은 '월드클래스'다. 특히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전웅태(26)는 세계랭킹 1위(현재 4위)를 차지했을 정도의 기량이다. 지난 4월 열린 2021 국제근대5종연맹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출전 자격을 획득했다. 이번이 두번째 올림픽인 그의 각오는 어느 선수보다도 단단했다. 자신을 향한 채찍질이 리우 올림픽 이후 5년 동안 이어지며 어느새 확신이 된 듯했다.
전웅태는 최근 본보와의 통화에서 “개인전에서 다 성적을 거둬봤다. 월드컵,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개인전 메달을 따봤기 때문에, 제가 커리어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딸 것은 올림픽 메달 밖에 안 남았다. 이제 어느 정도 자격이 생겼다고 생각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컨디션도 기량도 최고다. 그는 “물 들어 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올림픽은 정말 타이밍이 완벽하다.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목표는 금메달이다. 색깔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느 메달을 따든 ‘한국 최초’의 근대5종 메달이다. 한국은 올림픽 28종목(리우 올림픽 기준) 가운데 9개 종목(근대5종, 사이클, 럭비, 승마, 요트, 조정, 카누, 테니스, 트라이애슬론)에서 메달이 없다. 근대5종은 이들 가운데 메달에 가장 가까운 종목으로 꼽힌다. 신치용 선수촌장도 이번 올림픽의 '깜짝 금메달' 1순위로 근대 5종을 꼽았다. 전웅태는 “한국 근대 5종에서 최초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요즘에는 펜싱을 집중적으로 훈련한다. 일반 펜싱과 달리 근대5종 내 펜싱은 1점 승부다. 모든 선수와 돌아가며 한번씩 겨룬다. 그는 “메달 따려면 펜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 장점을 극대화하기 보다는 단점을 보완하려 한다. 펜싱에서 더 자신감 있게 확실한 승리를 얻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전웅태는 대표팀 코치와 선수들 이야기를 계속 꺼냈다. 남다른 동료애가 느껴졌다. 아직 한국의 근대5종은 초등학교부터 일반부까지 등록선수가 500명이 안 될 정도로 협소하다. 훈련할 수 있는 장소도 한정돼 있어 수년간 같은 곳에서 함께 훈련한다. 가족보다 본 시간이 많다. 그 시간들이 한국을 근대5종 불모지를 근대5종 메달 후보로 만들었다. “요즘 ‘될 놈은 된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 우리 근대5종 대표팀은 될 놈들이에요. 저희는 준비가 됐습니다. 이제 하늘에서 메달을 떨어뜨려 주기만 하면 됩니다.” 전웅태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팀은 현재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에서 합숙 훈련을 하고 있다. 7월말까지 훈련을 이어간 뒤 도쿄로 이동할 예정이다. 올림픽 근대5종 경기는 8월 5일부터 7일까지 무사시노노모리 스포츠플라자(펜싱)와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다. 한국은 남자 전웅태, 정진화, 여자 김세희, 김선우 등 4명이 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