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대선후보 팬클럽, 경쟁후보 비방은 더 독해졌다

입력
2021.07.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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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팬클럽 활동의 명암


'적극적인 정치 참여자인가, 갈등을 조장하는 주체인가.'

차기 대선이 7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주요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팬클럽들이 들썩이고 있다. 지지 후보에 대한 응원뿐만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을 소개하며 긍정 여론 형성을 주도하고 있다. 동시에 경쟁 후보의 과도한 공세를 차단하면서 여론전의 전위조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활동이 과열될 경우 상대 당 후보뿐 아니라 당내 경쟁 후보에 대한 비방이나 음모론을 생산·전파하는 진원지가 되기도 한다. 한 표가 아쉬운 후보 입장에서 팬클럽은 든든한 우군이지만, 자칫 통제불가능한 갈등과 분열을 초래하는 '양날의 칼'인 셈이다.

노사모 이후 자율성·온라인 기반 활동

정치인 팬클럽의 역사는 짧지 않다. 1980년대 민주산악회(김영삼 전 대통령 지지모임)와 새시대정치연합청년회(김대중 전 대통령 지지모임)가 1세대로 꼽힌다. 정당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당시엔 사실상 정치 결사체 역할을 담당했다. 2002년 대선에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 역할을 하면서 명실상부한 정치인 팬클럽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이후 다수의 정치인 팬클럽은 자율성과 온라인 활동에 기반한 노사모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년 대선을 향해 뛰고 있는 대선 후보들을 지지하는 팬클럽들도 이와 같이 실시간 활발한 소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팬클럽인 '연승클럽'에서 서울지역 대표를 맡고 있는 현동기씨는 "단톡방은 게시물의 저장성 등이 다소 떨어지는 문제는 있지만 실시간 소통에 유리해 정치인 팬클럽들이 단톡방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단톡방보다 '오픈 채팅방'을 더 많이 이용한다"고 했다. 일반 단톡방은 타 후보 지지자가 들어와서 '단톡방 폭파'를 시도하는 경우가 잦은데, 오픈 채팅방을 활용하면 관리자가 특정 게시물을 지우거나 외부인을 방에서 강제 퇴출시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권 개입 등 부작용 개선에는 노력

최근 정치인 팬클럽은 불투명한 회계 관리 등 과거의 부작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일부는 예전처럼 가입비나 정기회비를 받는 대신 돈이 필요할 때 원포인트로 모금을 한 뒤 그때그때 결산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현씨는 "이 전 대표가 참석하는 오프라인 행사에 가서 사용할 손피켓이나 현수막을 제작할 때는 단톡방에서 원하는 사람들이 몇 만 원씩 필요한 만큼 돈을 낸다"며 "그다음 행사가 끝나는 직후 바로 지출내역을 공개한다"고 소개했다.

회원이 많은 팬클럽의 경우 회비가 월 1만 원이라면 회원이 1만 명 이상이면 매달 억대의 운영비가 오갈 수 있다. 자칫 회원 간 활용비 운영이나 이권 다툼이 발생한다면 설립 목적과 달리 지지 후보에게 치명타를 입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운영진이 팬클럽을 자신의 정계 진출의 발판으로 활용하거나, 정치인의 사조직처럼 운영돼온 관행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 여권의 한 대선 후보 캠프 관계자는 "팬클럽들에 후보의 일정을 미리 알려주거나 캠프에서 제작한 홍보물도 바로 전달하는 정도로만 관여한다"고 했다. 과거 팬클럽의 몸집을 키우기 위해 운영자들에게 '특보'라는 직함을 주던 관행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후보에 대한 응원과 지지는 고맙지만 지지 후보의 행보와 무관한 활동을 벌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기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일부 야권 주자들의 팬클럽에선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팬클럽 중 회원 수가 가장 많은 '윤사모'는 최근 차기 회장선거 과정에서 선거인단 구성 모집을 둘러싸고 선거관리위원회가 해체되는 진통을 겪었다. 홍경표 윤사모 초대 회장은 "분탕질을 치는 이들이 들어와 단체 대화방에 비방과 음해가 난무했다"며 "회칙에 따라 차기 회장을 직접 지명했다"고 말했다.


자정 움직임 속 '노골적 비방' 유포 여전

팬클럽의 자정 노력에도 지지 후보 부각을 위한 경쟁 후보를 겨냥한 노골적인 견제는 여전하다. 팬클럽의 단톡방은 경쟁 후보에 대한 비방과 인격 모독성 표현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부정 여론을 확산시키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었다. 같은 당 후보라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대선 후보 경선이 진행되고 있는 여권 주요 후보들의 팬클럽들을 살펴본 결과, 단톡방에 올라오는 글의 상당 수가 야권 후보보다 당내 후보에 대한 욕설이었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한 팬클럽에는 16일 '자신이 친노 적통이라는 동아일보 22년 기레기 논설위원 이낙연의 실체'라는 글이 유통됐다. 이 전 대표의 팬클럽에는 '우원식 의원 사무실에 항의전화를 하자'는 글이 올라왔다. 우 의원이 하루 전날 이 지사에 대한 공개 지지를 선언하고 당원들에게 문자로 알렸다는 이유에서다. 경쟁 후보에게 유리한 기사에는 악플을 달고, 불리한 기사를 유통시키는 '좌표 찍기'도 성행하고 있다.

지나친 비방은 경선 이후 '화학적 결합'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201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모임과 이 지사를 지지하는 '손가락혁명군'은 날 선 공격을 주고받았다. 아직까지 강성 친문계 지지층에 이 지사에 대한 '비토 정서'가 남아 있는 배경이다.

윤 전 총장 지지모임의 SNS 페이지에서도 여권 후보인 이 지사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비방 글이 꾸준히 유통되고 있었다. 이 지사의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꾸준히 유통시켜 유도하거나 문재인 대통령 사진이 들어간 비방성 콘텐츠를 게시하는 방식이었다. 근거 없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윤 전 총장 측 한 지지모임 SNS 계정에선 "윤 전 총장에 대한 게시글 공유하기가 안 된다"며 "주사파 정권이 페이스북을 통해 의도적으로 윤 전 총장의 인기몰이를 저지한다"고 주장했다.

취재·정치행보까지 저지하는 어긋난 팬심

일부 열성 지지자들은 지지 후보의 현장 행보까지 과도하게 개입한다. 7일 윤 전 총장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회동한 후 가진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이 대표적 사례다. 윤 전 총장의 장모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지지자들이 윤 전 총장에게 "답변 마십시오. (질문한 기자가) 좌파입니다"라며 답변을 가로막았다. 이 지사의 한 지지자도 지난 1일 기자들이 윤 전 총장의 정치 참여에 대한 평가를 묻자, 취재진을 향해 "어제 일을 왜 묻느냐, 윤석열에 대해 묻지 말라"며 항의했다.

각 캠프는 이를 의식해 팬클럽과 일정 거리를 두기도 한다. 지난달 29일 윤 전 총장의 대선 출정식 현장에는 '윤사모' 외에 '윤전모(윤사랑 전국 모임)' '윤대모(윤석열 대통령 만들기 모임)' '열지대' 등 10개 이상 지지모임이 몰렸지만, 캠프 측은 어느 한 곳과도 직접 소통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윤 전 총장 캠프 관계자는 "팬클럽으로부터 많은 요청이 들어오지만 일정 공지도 하지 않고 있다"며 "한 번 만나면 그 친분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어 주의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지자가 취재진 질문을 가로막는 모습은 오히려 중도층에선 역효과가 날 수 있다"며 "현장에서 어떤 질문이 들어오더라도 막지 말라고 (지지자들에게) 당부한다"고 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치를 시스템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바라보는 한국 정치만의 현상"이라며 "팬클럽은 우리 편과 상대편을 구분해 선악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후보 입장에선 한 표가 아까우니 팬클럽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나중에는 정치인이 팬클럽에 끌려가는 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성택 기자
손영하 기자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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