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에 이어 미국에서도 제조 과정의 탄소 배출량이 많은 수입품에 세금을 매기는 '탄소국경세' 제도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 기후변화 대응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삼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관련 입법 추진에 뜻을 모은 것이다. 자국 내 업체에 대해서만 탄소 규제를 강화할 경우 발생하는 시장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친환경 정책의 일환이다. 다만, 이 제도가 현실화하면 기후 정책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새로운 분쟁거리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4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민주당은 3조5,000억 달러(약 3,992조 원) 규모의 친환경 예산안을 마련하면서 탄소 배출량이 많은 수입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안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예산안 요약 문서에는 '오염 유발국 수입품 수수료'를 시행하는 내용이 담겼다. 세금 부과 방식이나 비율 등은 미정이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 50% 이내로 줄이기 위한 이 예산안의 세부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번 친환경 예산안이 의회를 수월하게 통과하는 데에도 탄소국경세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면 자국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공화당을 설득하는 카드가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또 기후 대응 분야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국제사회에 보여 주는 효과도 낼 것으로 예상한다.
탄소국경세 도입 추진은 미국이 처음은 아니다. 이날 EU는 역내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감축하기 위한 입법안을 발표하면서 "세계 최초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탄소국경세로도 불리는 CBAM은 역내 제품보다 탄소 배출이 많은 수입 상품·서비스에 부과하는 일종의 추가 관세다. 철강과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등 탄소 집약적인 수입품을 대상으로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미국과 유럽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NYT는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 방향이 (이제는) 무역 정책으로도 향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무엇보다 WTO 분쟁 가능성이 크다. 탄소 규제에 동참하기 어려운 저개발 국가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탄소국경세를 반(反)자유 무역 조항으로 제소하게 될 수 있다. 또, 해외의 물품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정확히 검증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세금 부과 대상 물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각종 논란이 불거질 게 뻔하다. 블룸버그통신은 "까다로운 무역 정책을 고려해야 하고 수입국의 환경 정책을 판단할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면서 제도 시행 시 감안해야 할 요소가 상당히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탄소국경세는 지구촌의 기후위기 공동 대응을 이끌어내는 상징적 장치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에너지기후보좌관을 지낸 조지프 알디는 "탄소국경세가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면 세금을 부과할 일이 아예 없게 될 것"이라며 "압박을 느낀 무역 상대국들이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여러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