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회 전국 중학야구선수권대회 최종 3위와 제50회 전국소년체육대회 8강. 경북 구미의 구미중학교가 최근 거둔 성적이다. 올해 6월16일부터 보름간의 일정으로 치러진 대회에는 전국에서 132개 팀이 참가했다. 중학교 야구 대회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구미중 야구부의 이런 성적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야구 열정에 비해 인프라가 한없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이다. 인프라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구미는 야구 불모지다. 경북 서부의 경제 중심지에 포항 다음으로 인구가 많고(42만명), 인구 밀도 면에서는 경북에서 가장 높지만 야구 인프라만 놓고 보면 인구 2만5,000명인 경북 군위군도 보유하고 있는 정식 규격의 잔디 구장 하나 없다. 인근의 안동에도 용상 공원에 정규 시합을 진행할 수 있는 인조 잔디 구장 4곳이나 들어서 있다. 구미는 엘리트 중고교 야구부가 경기를 뛸 수 있는 경기장이 전무하다. 제99회 전국체전을 구미에서 유치하고서는 야구대회는 포항에서 여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새로 건립된 동락공원에 초등학생용 리틀 구장이 지어진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야구 열기가 약한 도시도 아니다. 사회인 야구리그 및 생활체육 야구리그 팀이 한창일 때는 100개의 팀에 달했다. 사회인팀이 경기를 펼칠 수 있는 야구장은 다수 있지만, 규격에 맞는 정식 경기장은 전무하다.
경기를 펼칠 구장이 없다는 것은 엘리트팀에게 열악한 환경일 수밖에 없다. 대회유치는 말할 것도 없고, 선수들도 전국대회에 출전하기 전 잔디 한번 밟아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구미중 야구부가 대단한 첫 번째 이유다.
구미중에 겪고 있는 두 번째 어려움은 선수 수급이다. 구미중 야구부는 초등 엘리트팀이 아닌 구미 리틀 야구부와 인근 김천 리틀 야구부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가 없어 잇몸으로 버티는 형국이다. 바로 옆에 구미 도산초등학교 야구부가 있기는 하지만 인원 부족으로 대회 출전조차 하지 못 하고 있는 만큼 다수의 선수를 수급받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도시의 중학교 야구부들은 우수 선수를 가려서 받을 정도로 여유가 있지만 구미중학교로서는 꿈 같은 이야기다. 들어오는 재목 하나나 공들여 키워내는 수밖에 없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전체 인원 23명인 야구부가 전국 132개팀이 참가한 대회에서 3위의 성적을 냈다는 것은 한 마디로 깜짝 놀랄 일이다. 그것도 서울 잠신중, 배재중, 청원중, 경기 부천중 등 인적 물적 자원이 집중되는 서울과 수도권의 쟁쟁한 팀을 꺾은 결과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을 딛고 기적 같은 성적을 낸 원동력은 선수들의 넘치는 열정과 훈련, 학교와 동문의 애정과 아낌없는 지원이다. 구미중학교를 처음 방문해본 사람은 언뜻 다른 학교와 특별히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다. 구미 전체의 사정과 다르지 않게 전용 야구장도 잔디도 없다. 야구부 숙소 옆에 실내 연습장이 한 곳 있지만, 이마저도 일반 야구부가 사용하는 실내연습장과 비교하면 규모가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이 바뀐다. 운동장 곳곳에 학교와 동문의 세세한 배려가 느껴지는 구석이 한두 구석이 아니다. 우선 운동장의 흙이 일반 재질이 아닌 야구장에서 사용하는 마사토다. 운동장에 마사토를 깐 학교는 고등학교 팀들 중에도 많지 않다. 비용 때문이다. 마사토는 고가의 흙이다. 내야 혹은 내야 일부에만 깔지 경기장 전체를 덮기는 힘들다. 마사토는 비싼 만큼 값을 한다. 보다 안전하게 훈련할 수 있고, 기량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된다. 불규칙 마운드가 줄어들고 발목에 가는 부담을 덜어줘 발목 부상 위험이 현저히 낮아진다. 고교 야구팀에서도 보기 어려운 대형 타격망도 눈길을 끈다. 연습 시 이동이 가능한 타격망을 2개나 보유하고 있다. 운동장 한쪽 편에 마련된 투구 연습장도 눈에 들어온다.
구미중 운동장은 야구 전용구장이 아니다. 외야 펜스도 존재하지 않지만, 외야 쪽이 재미있는 구조물이 하나 있다. 골프 연습장의 유선형 망처럼 땅바닥까지 커버하는 그물이다. 원래는 땅에서 1m 정도 떠 있었지만 그물 밑으로 공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높이를 낮추었다. 그 덕에 연습 후 공줍는 시간을 대폭 줄였다. 야구부 선수들은 "그물 높이를 낮춘 건 최고의 아이디어"라면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 아이디어는 민경두 구미중 교장이 냈다. 그물망뿐 아니라 운동장 곳곳에 민 교장의 열정이 배어있다. 운동장에 깔린 마사토만 하더라도 민 교장이 시와 교육청을 뛰어다니면서 지원을 요청했다. 민 교장의 야구 사랑은 뿌리가 깊다. 우선 고향이 강원도 춘천으로 춘천고를 나왔는데, 춘천고에도 한때 야구팀이 있었다. 모교가 야구 열정이 잉태된 곳인 셈이다. 민 교장은 대회가 열리면 어김없이 야구팀을 따라 대회장으로 향한다. 야구인들 사이에서는 '단장님'으로 통한다. 다른 기관이나 손님들에게 야구부를 소개할 때도 감독과 선수단에 앞서 교장이 언급된다. 넘치는 야구 사랑이 알려진 까닭이다. 이런 열정 덕분에 교장을 중심으로 야구부장, 감독, 동문이 혼연일체로 뭉칠 수 있었다.
민 교장의 든든한 지지를 받고 있는 조문식 구미중 감독은 구미중 야구부 중흥의 주역이다. 그의 면면을 보면 지도력에 금세 수긍이 간다. 1993년 경북고 청룡기 대회 우승 멤버로 강동우 두산 코치와 포철고 김수관 감독과 동기고 이승엽 해설위원이 1년 후배다.
조 감독의 주된 역할은 엘리트 출신이 아닌 리틀 야구단에서 야구를 배운 학생들을 엘리트 선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에서의 실력을 놓고 이야기하면 리틀 출신과 엘리트 야구팀 출신 선수의 수준 차는 눈에 띌 정도다. 조 감독은 “코치들이 열심히 가르치고 선수가 잘 따라와 주면 2학년 말쯤에는 엇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온다”고 설명했다. 구미만의 장점도 있다.
"대도시 아이들과 달리 너무 순수해서 꾀를 부리는 친구가 거의 없습니다. 흡수하는 속도가 빠릅니다. 코치들의 지도가 통하는 이유죠. 이런 원석을 다듬어 선수로 키워내서 타학교를 이길 때 벅찬 보람을 느낍니다.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서 인근 대도시 고교에서 우리 선수를 데려가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낍니다."
조 감독은 "다들 여유롭지 않은 상황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중에 프로에 진출해서 구미를 대표하는 선수로 뛰는 모습이 저절로 연상된다"면서 "미래의 프로야구 스타들을 키운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지도한다"고 밝혔다. 또한 "대도시 학교들과의 경기에서 주눅들지 않고 용감히 싸워준 우리 선수들을 비롯해 이번 대회를 위해 수고해준 장영서 코치, 윤성웅 투수 코치, 홍준표 야수코치, 그리고 언제나 야구부를 위해 물심양면 밀어주고 챙겨주시는 교장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구미중 야구부 팀은 부산 기장에서 8월6일부터 8월15일까지 펼쳐지는 대통령기 전국 중학 야구 대회에 경상북도 대표로 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