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군함도 한국인 노역 설명하라"... 꿈쩍않는 일본 직격

입력
2021.07.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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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위 "日, 군함도 이행 조치 강한 유감"
일본 정부 수용 가능성 낮아... 강제성 없는 탓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위원회가 일제강점기 군함도(端島ㆍ일본명 하시마섬)에서 이뤄진 강제노역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일본 정부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한국인들의 가혹한 노역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하라”는 구체적 개선책도 요구했다. 국제사회가 군함도 강제동원 및 일본의 왜곡을 사실상 공인한 것으로, 유네스코 보고서에 관련 내용이 적시된 건 처음이다. 다만 구속력은 없어 일본이 유네스코 결정을 이행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조사 보고서 "日, 1910년 이후 역사 해석 불충분"

세계유산위는 12일 홈페이지에 ‘일본 근대산업시설 결정문’을 공개했다. 새로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을 대상으로 위원회 측 결정과 권고가 제대로 이행됐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결정문은 16~31일 열리는 제44차 세계유산위 회의에서 공식 채택될 예정이다.

세계유산위는 군함도 유산 등재 후 일본 정부의 조치가 불충분하다고 결론 내렸다. 결정문에는 “당사국(일본)이 약속한 몇 가지 사항을 이행한 데 대해 만족한다(4항)”면서도 “그러나 당사국이 관련 결정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은 점에 강한 유감(Strongly regrets)을 표한다(5항)”는 내용이 명시됐다. 6항에는 세부 개선 사항도 담았다. 세계유산위는 “다수의 한국인 등이 본인 의사에 반해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 노력한 사실과 일본 정부의 징용 정책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촉구했다. 이밖에 △희생자 추모 조치 △국제모범 사례 고려 △관련 당사국(한국) 간 대화 지속 등의 권고도 결정문에 포함됐다.

이번 결정문은 유네스코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 3명이 일본이 지난해 개관한 ‘도쿄 산업유산 정보센터’를 시찰한 결과 보고서를 토대로 작성됐다. 60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유네스코는 “1910년 이후의 전체 역사 해석 전략이 불충분하다”고 총평했다. 근대 산업시설이란 이름 뒤에 숨은 어두운 역사를 일본 정부가 시인하지 않는다는 의미여서 결정문에도 비판적 시각이 담길 것으로 점쳐져왔다.

일본은 2015년 7월 군함도를 포함한 근대 산업시설 23개소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성공했다. 등재와 동시에 일본은 “자기 의사에 반한 동원”과 “강제 노역”이 있었던 점을 인정하고, 정보센터 설치 등을 통해 희생자를 추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산업유산 정보센터가 공식 개관했지만, 등재 당시 공언한 조치는 전혀 이행되지 않아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일본은 오히려 “강제 징용된 한국인과 일본인 노동자들이 모두 열악한 환경에 노출돼 있었다” 등 일방적 주장이 담긴 ‘군함도 해석전략 이행현황 보고서(2020년 12월)’를 세계유산위에 제출한 뒤 “의무를 다했다”는 뻔뻔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결정문에) 강한 유감 등의 표현이 들어간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일본의 약속 이행 주장이 어불성설이라는 점을 국제사회가 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주장 잘못, 국제사회가 확인"

관건은 세계유산위의 압박에 일본이 얼마나 호응할지 여부다. 현재로선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세계유산위 결정에 강제성이 없는 데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부의 성향으로 봤을 때 일본이 전향적 태도를 취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등재 취소’라는 마지막 선택지가 있지만, “유산 자체의 본질적 특수성이 완전히 훼손된 경우” 등 조건이 극히 까다로워 사실상 불가능한 카드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조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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