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억 사기 의혹 청연한방병원장' 수사, 제 식구 겨눈 경찰 칼끝

입력
2021.07.08 12:29

청연한방병원 대표원장 이모(42)씨의 대여금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의 칼끝이 조직 내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간 수사가 이씨의 사기 행각을 밝히는 단계였다고 본다면 이제부턴 이씨에게 사채에 가까운 '돈놀이'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경찰 간부들의 비리를 파고드는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변수는 이씨의 '입'이 될 전망이다. 지난달 11일 구속됐다가 12일 만에 보증금 납입 조건부로 석방된 이씨가 경찰 간부들과 돈거래 과정에 이자 지급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수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8일 이씨의 주거래 은행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현직 경찰 간부들이 이씨의 사기적 금전대차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이씨의 은행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고, 검찰도 이를 받아들여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2019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 신규 사업(헬스케어 리츠) 및 운영자금 명목으로 건설회사 사장 등 지인 7명에게 171억 원을 투자받거나 빌린 뒤 갚지 않았고, 억대 건강보험료를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달 23일 구속적부심을 통해 법원으로부터 보증금 2억 원 납부와 수사기관 소환 의무 출석 등을 조건으로 석방됐다.

경찰이 이씨의 은행 계좌를 들여다보겠다고 나선 이유는 이씨와 경찰 간부들과의 부적절한 돈거래를 캐기 위한 것이다. 경찰은 앞서 이씨를 사기 혐의로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씨의 금융계좌 조회를 통해 경찰 간부 3명이 이씨와 돈거래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사건 초기 경찰 안팎에선 "A간부는 20억원을, B간부는 10억원을 이씨에게 각각 빌려줘 고리(高利)를 받아 먹다가 돈을 날렸다"는 얘기가 돌았다. 경찰은 이번 이씨의 계좌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면서 2018년 1월부터 입출금 거래 내역을 조회하겠다고 했다. 이씨를 상대로 이자놀이를 한 경찰 내부 구성원이 더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경찰은 이씨가 지인 등에게 돈을 빌리면서 상당수 대여자에게 이자제한법상 최고이자율(연 24%)을 초과한 이자를 줬다는 소문에 주목하고 있다.

경찰이 이씨를 상대로 두 번째 강제 수사를 벼르고 있지만 이는 사실 "제 식구 수사에 미적댄다"는 비난 여론에 떠밀린 측면도 적지 않다. 실제 지난해 11월 이씨를 포함한 청연 메디컬 그룹 계열 병원장 3명이 부도 위기에 몰리며 일반회생 신청할 당시부터 고리를 받아 챙긴 경찰 간부 연루 의혹이 터져나왔지만 관련 수사는 상당히 후순위로 밀렸다. 이 와중에 "이씨가 검찰에서 이자놀이를 한 경찰 간부들 이름을 불었다"는 미확인 뒷얘기까지 퍼지고 있는 것도 경찰의 2차 계좌 압수수색 영장 신청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에 책잡힐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뜻도 깔려 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수사는 이씨의 사기 혐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사기 사건은 일단락된 만큼 이씨와 고리를 주고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경찰관 등에 대해 이자제한법 위반 여부를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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