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해커 조직이 미국 공화당 본부 격인 전국위원회(RNC) 해킹을 시도했던 사실이 공개되면서 워싱턴이 발칵 뒤집혔다. 백악관은 물론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철저한 조사를 다짐했다. 러시아 정부가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미러 외교관계는 물론 미국 국내 정치에서도 변수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일리노이주(州) 방문 행사 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함께 국가안보팀의 사이버 해킹 대책 관련 브리핑을 받았다고 백악관이 전했다. 지난주 미국 정보통신(IT) 보안업체인 카세야를 대상으로 한 ‘랜섬웨어(컴퓨터 사이버 공격 후 몸값 요구 방식)’ 해킹에 이어 공화당전국위원회까지 공격을 당하면서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연방수사국(FBI)과 사이버안보ㆍ기간시설안보국(CISA)이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정부는 아직 해킹 배후에 누가 있는지 공식 판단하지 않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동시에 “대통령이 행동하기로 결심하면 다양한 옵션을 갖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사이버 공격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대응책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할 메시지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에게 전달할 것”이라고만 답했다. 지난달 16일 스위스 제네바 미러정상회담에서 논의했던 해킹 대응 협력 방안을 실행하라는 압박이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해커들은 지난주 RNC에 IT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중 한 곳인 시넥스를 통해 사이버 공격을 시도했다. 해커들은 ‘APT29’ 또는 ‘코지 베어’이고, 이들은 러시아 대외정보국(SVR)과 연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민주당전국위원회(DNC) 공격과 네트워크 관리 소프트업체인 솔라윈즈를 통한 연방정부기관 9곳 침입도 이들의 소행으로 알려져 있다. 카세야는 데이터 복구를 위해 7,000만 달러(약 790억 원)를 내라는 협박도 받았다.
백악관은 최고위 레벨에서 러시아 정부와 접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국은 다음 주 고위 당국자 회담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사키 대변인은 “러시아 정부가 자국에 있는 범죄자에 대한 조치를 할 수 없거나 취하지 않을 경우 우리 스스로 조치를 하거나 그럴 권리를 준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유관업체 콜로니얼 파이프라인, 정육업체 JBS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러시아 조직의 사이버 공격이 이어지면서 미국도 러시아에 경고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해킹은 미국 국내 정치 측면에서도 인화성 강한 현안이다. RNC는 미국의 야당인 공화당 전국 조직을 총괄 지휘하는 곳이다. RNC 측은 “정보 유출은 없었다”고 했지만 민감한 당 관련 정보가 러시아에 넘어갔을 경우 미국 정치권에도 일대 혼란이 불가피하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러시아 정보기관의 미국 민주당 해킹이 일조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유사한 상황이 역으로 발생할 수도 있어 모두 민감해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