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속 천리마가 날아오르게 한 전승 세대들처럼 살며 투쟁해야 한다.”
요즘 북한 매체에 자주 보이는 단어가 있다. ‘천리마’다. 낯선 용어는 아니다. 6ㆍ25 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말부터 경제 복구에 필요한 인력 동원을 위해 하루에 1,000리(400㎞)를 가는 천리마처럼 노동에 힘쓰라는 의미로 쓰였다. 달라진 건 ‘사람’이다. 북한은 연일 천리마 세대의 손자뻘인 청년들을 향해 “천리마 세대를 배워야 한다”고 다그치고 있다. 북한이 60년 지난 시대정신을 갑자기 끌어들인 이유는 뭘까.
노동신문은 5일 “전체 일군(일꾼)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천리마시대 세대들처럼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구호를 높이 들고 맞다드는(맞닥뜨린) 시련을 과감히 뚫고 나가야 한다”면서 특히 “청년들이 앞장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범 사례도 소개했다. 극심한 복통에 시달리면서도 연구사업에 매진한 김일성종합대학의 한 학생을 극찬했다. 청년들이 천리마 세대의 희생 정신을 본받아 경제난 등 내부 위기를 극복하자는 주문이다.
북한 당국이 ‘청년 다잡기’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간단하지 않다. 체제를 뒤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어서다. 1990년대 후반 출생한 북한 청년들은 무너진 국가 배급망 대신 장마당으로 대표되는 초기 시장경제를 체험한 이들로, 이른바 ‘장마당 세대’라 불린다. 자본친화적인 데다, ‘한류’ 등 외부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고 개인주의 성향도 강하다. 북한판 ‘MZ 세대(밀레니얼+Z)’라고도 할 수 있다. 북한 지도부 입장에선 미래 주역인 청년들의 사상적 해이를 이대로 방치했다간 ‘전체주의’ 통치 근간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경제난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것도 청년들의 체제 이탈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한국무역협회(KITA)가 지난달 30일 발간한 북한 무역 보고서를 보면 올해 1~5월 북한의 대중국 수출입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무려 83.6% 급감했다. 5월 1㎏당 4,200원이던 쌀값은 한 달 만인 6월 5,120원으로 껑충 뛰었다. 생필품 값은 오르고 외부 지원이 막막한 상황에서 청년들의 인내심 역시 바닥날 수밖에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도 위기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앞서 4월 당 26차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일시 잘못된 길에 들어선 청년들도 꾸준히 교양하여 사회 앞에 떳떳이 내세워야 한다”며 청년 세대의 자발적 참여와 사상 무장을 강조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은 과거처럼 물리적 통제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청년 민심을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과거 사례와 일화, 유인책 등 납득 가능한 근거를 제시해 결속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