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음주뺑소니 국가유공자, 국립묘지 안장 금지는 정당”

입력
2021.07.05 11:17
4·19 혁명 참여 공로로 국가유공자 등록
국립묘지 안장 여부 물었는데 '불가' 통보
불복 소송냈지만… 법원 "안장 거부 정당"

국가유공자라고 하더라도 ‘음주 뺑소니’ 등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정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 이종환)는 A씨가 “국립 4·19 민주묘지 안장 비대상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4·19 민주묘지 관리소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씨는 1960년 이승만 독재 정권에 항거하며 일어난 4·19 혁명 당시 학도호국단 학생위원장을 맡는 등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공로로 2010년 4월 건국포장을 받고 국가유공자로 등록됐다.

하지만 A씨는 지난해 5월 “국립 4·19 민주묘지 안장 대상에 해당하는지 생전에 알려달라”는 신청을 냈다가, 대상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았다. 국가보훈처 산하의 국립묘지 안장대상심의위원회가 A씨의 과거 음주 뺑소니 사건을 문제 삼은 것이다. 실제 A씨는 1981년 8월 만취 상태로 운전을 하다가 행인을 친 뒤 도주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피해자는 전치 5주 뇌좌상 등을 입었고, 같은 해 10월 A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 받았다.

4·19 민주묘지 관리소 측은 ‘안장대상심의위가 국립묘지 영예성을 훼손한다고 인정한 사람’은 안장할 수 없다고 규정한 국립묘지법을 근거로 들었다. 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공헌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 설치된 국립묘지의 목적을 고려할 때, 국가유공자라도 범죄행위 등으로 문제가 된 이는 안장 대상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A씨는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 등 각종 상을 받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사고 후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치료비·위자료를 지급해 원만히 합의했다”며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훼손했다고 할 수 없고 해당 처분은 (심의위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고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39%로 당시 도로교통법이 허용하는 한도보다 거의 여덟 배 높았던 점 등을 보면 사회적, 윤리적 비난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사건 이후 A씨가 국가유공자로 등록되고 국가나 사회에 헌신했더라도 이미 저지른 범행의 정도가 경미한 것으로 상쇄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심의위의 결정이 객관성을 결여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고 밝혔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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