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재밌는 걸 니들만 했어?"… 축구에 진심인 그녀들 일 냈다

입력
2021.07.06 04:30
21면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정규방송 4회 만에 시청률 7.5%로 껑충

"여자들이 모여서 축구를 한다고? 처음에는 다들 그랬지. 골때린다고."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녀)'의 시작을 알리는 내레이션이다. 언제부터 여자들이 공을 차는 것이 골때리는 일이 된 걸까. "남자들만의 경기라고 생각했었는데...(코미디언 신봉선)" 축구는커녕 운동장의 한모퉁이만 허락됐던 여성들이 푸른 그라운드를 갈지자로 뛰어다닌다. 목표는 오직 '승리'이고, '한 골'이다.

'골때녀'의 이승훈 PD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출연자들이 방송이란 생각보다 실제로 경기를 하러 오고, 이기기 위해 스스로 연습을 한다"며 "이들의 자세가 대한민국의 어떤 예능과도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누구보다 축구에 진정성을 보인다. 진심은 통했다. 지난 2월 설 특집 파일럿으로 편성됐다 두 자릿수 시청률(10.2%)을 기록한 '골때녀'는 이달 정규 편성을 꿰찼다. 지난달 9일 첫 방송 2.6%였던 시청률은 4회 만에 3배 가까이 오른 7.5%를 찍으면서 그 기세를 몰고 있다.


'골때녀'는 여성으로만 이뤄진 6개 축구팀이 리그전을 펼치는 스포츠예능이다. 전무후무하다. 평균 나이 48세 비혼인 SBS 예능 '불타는 청춘' 출연자로 이뤄진 '불나방', 개그우먼팀인 '개벤져스', 국가대표 출신이나 국가대표 가족이 모인 '국대 패밀리', 모델팀 '구척 장신' 등 기존 4개 팀에다 정규 편성되면서 액션에 능한 배우들로 모인 '액셔니스타'와 영국·파라과이·프랑스 등 출신 외국인팀 '월드클라쓰'가 새로 합류했다. 왕년의 태극전사 황선홍, 김병지, 최진철, 최용수, 이영표, 이천수가 감독으로 나섰다.


'골때녀'는 말 그대로 '각본 없는 드라마'다. 영원한 승자와 패자가 없는 스포츠의 매력에다 축구를 처음 해보는 여성들의 도전과 성장이라는 서사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드라마다. 벤치 신세였던 송은영과 팀 내 '구멍'이었던 이현이는 결정적인 순간 한 골을 넣고 만다. 지난 설 특집에서 4대 0으로 졌던 '구척 장신'은 '국대 패밀리'와의 리벤지 매치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을 벌인다. 30대 마지막 목표가 '골 넣고 이기는 것'이라는 한혜진은 "최근에 이렇게까지 큰 성취감을 느낀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너무 행복하다"고 감격해했다.

'국대 패밀리' 감독을 맡은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한 골 먹고, 쫓아가고, 도망가고, 따라가고, 스포츠에는 당연한 승리가 없다. '골때녀'에도 그런 스토리가 충분히 만들어진다"고 재미 요인을 짚었다. '월드클라쓰'의 감독인 이영표 강원FC 대표는 "최고의 수준에 오르든 오르지 않든 최선을 다한 사람이 주는 감동이 있다"며 "순수한 열정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 자체가 진한 감동을 줬고, 저에게도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출연자들은 몸을 사리지 않았다. 정규 편성까지 4개월간 일주일에 최소 3번 팀 훈련과 기초 체력을 위한 개인 훈련을 따로 소화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다. "노래를 대할 때처럼의 열정 같은 게 생겼어요. 공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세상 처음 알았어요.(신효범)" 한채아는 어머니 축구교실에 등록했고, 심하은은 직접 동네에 아줌마 축구단('엄청라 FC')을 만들었다. "막상 해보니까 '세상 이렇게 재밌는 걸 니들만 했니'라는 생각이 들(최여진)" 정도란다.


여자 축구에 대한 많은 편견을 날려버리는 '골때녀'지만 "남성 축구의 예능적 패러디로 접근하는 데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건(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아쉽다. 파일럿에선 '정대세의 아내'라고 마킹한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명서현은 이번에는 그저 '9번 명서현'이 됐다. 그럼에도 그가 일취월장한 기량을 선보일 때마다 남편의 모습이 함께 등장한다. "축구선수의 아내로 살다 축구선수가 된다는 건 생각도 못해봤는데 너무 좋다"는 그의 말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황 평론가는 "여자 축구가 생전에 없던 것도 아닌데 마치 여자 축구가 처음인 양하는 '골때녀'의 접근 자체는 문제"라며 "(여자 심판이 등장한 것처럼) 여자 축구 관계자들이 좀더 전면에 나와 원래 있던 여자 축구가 더 많이 보여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땀흘리며 운동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인지하지 못했던 사회적 억압을 받던 여성들이 팀플레이를 하고, 그 안에서 도전 정신과 승부욕을 체험하면서 느끼는 무한한 해방감과 감격이 '골때녀'가 주는 감동과 재미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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