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급식 사태로 홍역을 치렀던 군 당국이 급식체계를 51년 만에 완전히 뜯어고친다. 그간 독과점(수의계약)으로 일관했던 식자재 납품 방식을 민간이 참여하는 경쟁 입찰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개성 강한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장병들의 특성에 맞게 식단도 국산만 고집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방부는 4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장병 급식 개선방향’을 발표했다. 가장 큰 변화는 급식조달 시스템에 초점이 맞춰졌다. 학교급식 시스템을 본뜬 ‘장병급식 전자조달시스템’(가칭 MaT)을 단계적으로 도입해 수요자 중심 식단을 꾸리겠다는 복안이다. 영양사가 한달 메뉴를 미리 편성하는 학교급식처럼 수요에 맞춰 필요한 식재료를 주문하는 식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은 1970년부터 농ㆍ축ㆍ수협과 수의계약을 통해 이미 정해진 식재료로 메뉴를 만들었다”며 “공급자 위주의 식재료 조달체계 탓에 장병 선호도가 식단에 반영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이르면 2023년 제도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농ㆍ축ㆍ수협 1,000여 곳 가운데 군납 업체는 90여 개로, 이들은 1년 단위 수의계약을 맺고 군에 식자재를 납품해왔다. 하지만 돼지, 닭고기 등 축산물은 ‘마리’ 단위로 계약해 돼지 목살, 닭다리 등 장병들이 좋아하는 부위는 공급량이 크게 부족했다. 장병 선호도가 낮은 흰우유도 연간 393회(하루 1.2개)나 납품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수산물도 2015년부터 매년 실시하는 외부 전문기관의 품목별 만족도 조사에서 최하위 수준인데 단가까지 높아 급식비 대비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장병 급식 전자조달 시스템이 도입될 경우 농ㆍ축ㆍ수협뿐 아니라 대기업은 물론 해외 수입업체도 입찰 참여가 가능하다. 품질과 가격만 우수하다면 미국산 등 수입산 쇠고기도 얼마든지 군 장병 밥상에 오를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아직 7, 8개 부처와 긴밀히 협의해야 해 구체적 수입 품목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면서도 “농식품부가 농민을 대변하고 해양수산부가 어민을 대변하듯, 국방부는 장병을 대변하는 부처라는 생각으로 협의에 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농축수산업계 등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이번만큼은 장병 복지를 최우선으로 지켜내겠다는 것이다.
실제 그동안 정부는 농어민 보호와 지역균형 발전 명목으로 군 당국에 식자재 구매를 강요한 측면이 컸다. 2009년 쌀 소비가 급감해 전국에 82만 톤이 넘는 쌀 재고가 쌓이자 쌀값 안정을 위해 생일을 맞은 병사에게 쌀 케이크를 제공하라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2019년 국방부가 흰우유 외에 딸기, 초코, 바나나 등 가공우유를 추가하자 낙농업계가 반발한 사례도 있었다. 가공우유에는 국산이 아닌 수입 분유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농식품부는 당시 국방부에 “국내산 원유가 70~80% 들어간 가공우유를 납품해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