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핵심 피의자 3명이 30일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10월 최재형 당시 감사원장의 수사의뢰 이후 8개월 만에 사건이 일단락된 것이다. 다만 백 전 장관의 배임 교사 혐의를 두고 김오수 검찰총장과 수사팀의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아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손을 빌리기로 하면서, 최종 사건 처리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 이상현)는 이날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과 백운규 전 장관,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관심을 모았던 백 전 장관의 배임 혐의 적용 여부는 김오수 총장이 직권으로 소집한 수사심의위 결정을 참고해 결정하기로 했다.
검찰에 따르면 백 전 장관과 채 전 비서관은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 위해 한수원 반대에도 조기폐쇄 의향을 담은 '설비현황조사표'를 제출하게 하고 한수원 이사회 의결을 밀어붙인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업무방해)를 받는다. 이로 인해 내년 11월까지 운영이 보장됐던 월성 1호기는 2018년 6월 15일 조기폐쇄 및 가동중단하기로 결정됐다.
정재훈 사장은 이 과정에서 월성 1호기가 경제성이 없는 것처럼 평가 결과를 조작하고, 조작된 결과로 이사회를 속여 한수원에 1,481억 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업무방해)를 받는다. 수사팀은 정 사장이 월성 1호기 가동 중단에 따른 손해를 정부가 보전해줄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백 전 장관 지시를 그대로 따르면서 한수원에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대전지검은 부장단 회의를 통해 백 전 장관 등 세 사람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백 전 장관과 정 사장에게는 배임 혐의가 추가로 적용돼야 한다는 의견을 모아 지난 28일 김오수 총장에게 보고했다. 김 총장과 대검 수뇌부는 직권남용 혐의 적용에 대해선 동의했지만, 배임 혐의에 대해선 이견을 보였다. '공기업인 한수원 등이 정책 결정에 따라 한 행위'에 대해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이익을 본 쪽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이에 따라 대전지검에선 30일 노정환 지검장은 물론 박지영 차장검사, 이상현 부장검사까지 김 총장을 만나 설득에 나섰지만 결국 김 총장 입장을 바꾸진 못했다.
김 총장의 반대를 두고는 검찰 안팎에서 여러 해석을 내놓는다. 일각에선 정 사장이 배임 혐의로 기소된 상황에서 백 전 장관에까지 배임죄가 적용될 경우 한수원 모기업인 한전 주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공산이 크기 때문에, 김 총장이 정부에 부담을 주는 결정을 선뜻 내리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민사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소송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김 총장 해석에 일리가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잘못된 정책에 따른 피해가 생겼을 경우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하지만, '불법적으로 재산상 이익을 취하려는 의사'가 중요한 배임죄 적용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김 총장이 백 전 장관에 대한 수사심의위 소집을 직권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선 "수사 총책임자인 검찰총장이 책임을 떠넘겼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지방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부장검사들이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는데도 외부 전문가에게 판단을 받아보자는 건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