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는 봉사활동이 아니다

입력
2021.06.30 04:30
26면

SK그룹의 주력 계열사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사회적 가치를 측정한 결과, 2,192억 원의 적자를 냈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 회사를 비롯한 SK그룹 계열사들은 매년 재무제표에 적는 영업실적과 별개로 이른바 ‘사회적 가치 창출 실적’을 스스로 평가해 공개한다.

이는 외부의 누군가가 시킨 게 아니다. 매년 흑자도 아니고 아직은 크게 이목을 끌지도 못한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은 수년 전부터 이를 꾸준히 독려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이 조직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경쟁력을 높일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SK그룹이 정한 사회적 가치 평가 분야는 크게 3가지다. 우선 본업으로 얼마나 사회에 기여했느냐. 정유가 주요 사업인 SK이노베이션은 대기오염 물질을 많이 내뿜어 이 분야가 늘 마이너스다. 작년엔 1조50억 원의 적자를 냈는데, 저감설비 등을 늘린 덕에 그나마 전년보다 적자 폭을 1,184억 원 줄였다고 했다.

고용, 배당, 납세 등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경제간접 기여성과’도 전년보다 4,700억 원 줄었다. 작년 코로나19 충격으로 돈을 많이 못 벌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부, 봉사활동 등의 성과를 더해보니 전체적으로 2019년 1,717억 원 플러스 효과를 냈던 사회적 가치가 작년에는 4,000억 원 가까이 뒷걸음쳤다는 게 이 회사의 고백이다. 사회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SK이노베이션은 장기적으로 아예 탄소를 뿜지 않는 사업으로의 전환까지 계획하고 있다.

오랫동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봉사활동’과 동의어였다. 겨울이면 연탄을 나르고, 명절엔 고아원, 양로원에 음식을 싸 들고 찾아가는 게 이른바 ‘착한 기업’이었다. 그래서인지 직원들이 업무를 제쳐두고 탄소 배출 주범인 연탄을 선물하는 행위가 칭찬받기도 했다. 요즘 강조되는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으로 보자면 생산성을 저해하고 환경까지 망치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갈수록 봉사활동은 착한 기업의 기준 가운데 극히 일부가 되고 있다. 물류센터 대형 화재로 질타를 받는 쿠팡의 잘못도 봉사활동이 아니었다. 심지어 불을 왜 냈느냐도 아니다. 물류업의 기본인 시설 안전에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의심, 평소 직원 안전에 관심이 부족해 이번 화재를 더 키운 것 아니냐는 불신이 ‘착하지 않은 기업’ ‘거부해야 할 서비스’로 몰린 주된 이유다.

ESG 경영 측면에서 쿠팡의 약점은 S(안전, 노동 등)의 부족이다. 하필 화재 당일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해 논란을 빚은 김범석 창업주의 처신은 G(지배구조)의 모자람과 연결된다. 한 증권사는 쿠팡 화재 직후 “단지 수익률뿐이 아닌 시설물 안전 등 ESG 준수 여부가 물류기업의 투자 기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규모 투자를 받아 급성장해 온 쿠팡에는 치명적인 경고다.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기업이 사회적 평판을 지킬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 ESG든, 다른 무슨 표현이든 기업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흐름은 계속될 것이다. 상식을 지키며 돈을 잘 벌고, 그 과정에서 사회에 끼치는 해를 최소화하고, 반대로 기여를 극대화하는 것. 소비자는 이런 기업의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고, 자본은 이런 기업을 골라 투자한다. 착한 기업은 봉사활동만으로 될 게 아니다.


김용식 경제산업부장